ADVERTISEMENT

판사회의, 신 대법관 사퇴 촉구하지 않기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자리에 앉고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박종근 기자]


일부 판사가 “신 대법관의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으나 “법관의 신분이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는 만큼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 대법관이 대법관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데 대해선 다수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전국 법원 판사들이 이번 회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신 대법관 파문이 확산될지, 아니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단독판사들은 이날 오후 6시3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내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5시간이 넘도록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 판사들은 만장일치로 “신 대법관이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으면서 판사들에게 재판과 관련한 e-메일 등을 보낸 것은 재판권 침해”라는 의견을 모았다. 판사들은 “고위 법관이 개별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제도개선 연구 모임을 발족하기로 했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과 강일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이날 밤 늦게 서울중앙지법을 방문했다. 김 처장 등은 판사들의 반발에 따른 대책을 서울중앙지법 수뇌부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 29명은 이날 오후 1시 신정동 청사 중회의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남부지법 판사들은 신 대법관 논란에 대해 ‘명백한 재판권 침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회의 뒤 공개된 ‘회의 결과 요약문’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신 대법관의 행위는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것처럼 ‘사법행정권의 일환’이라거나 ‘외관상 재판 관여로 오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재판권 침해로 위법하다”고 말했다.

판사들은 “신 대법관의 사과문 발표가 이번 사건의 파문을 치유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으나 신 대법관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추후 지속적인 논의를 펼쳐 나겠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아울러 지난달 열린 전국 법관 워크숍에서 약속한 대로 법관 독립을 위한 제도적 개선책을 시급히 밝히라고 대법원에 촉구했다.

내부통신망에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송선양 전주지법 판사는 “법관에 대한 사퇴 압력은 다른 형태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란 글을 올렸다. 문수생 서울고법 판사는 “개별 법관의 신분 보장이 사법권 독립과 신뢰회복에 장애가 된다면 사법권 독립 앞에 길을 내줘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서울동부·북부지법 단독판사들은 15일 회의를 열 예정이다.

한편 신 대법관은 이날 예정대로 대법원 선고 공판에 참석했다. 신 대법관은 전날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개인적인 의견을 일절 나타내지 않고 있다. 법원 인사들을 만나거나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박성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