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 '날 밀어넣기' 원조, 쇼트트랙 전명규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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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국의 금메달 제조기' .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전명규 감독 (35) , 바로 그를 일컫는 말이다.

22일 이른 아침 눈을 뜬 그는 한달만에 거울을 들여다 봤다. 텁수룩한 수염에 충혈된 눈. 서울을 떠난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지만 흡사 10년을 전쟁터에서 보낸 사람같았다.

두달전 태어난 딸 세림이를 내일이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면도를 시작했다. 88년 캘거리올림픽부터 92년 알베르빌, 94년 릴레함메르, 그리고 이번 나가노까지 모두 네차례 올림픽에 참가했지만 이번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

사실 전감독만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양산해낸 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야말로 금메달 제조기요, 조련사로 불릴 만하다.

시범경기로 치러졌던 캘거리올림픽부터 이번까지 그가 일궈낸 금메달만 모두 11개.

63년 강원도철원에서 태어난 전감독은 동송초등학교 1년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1m83㎝의 거구인 전감독은 강원중 - 서울체고 - 한체대를 거치며 중장거리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했지만 당시 한국빙상은 세계수준과 워낙 실력차가 커 빛을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인 빙상은 실업팀이 없어 더이상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결국 24세의 청년 전명규는 지도자의 길을 택했고 87년 6월부터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를 맡아 11년째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강훈과 치밀한 선수관리가 돋보이는 전감독이 쇼트트랙을 통해 만들어낸 상품은 부지기수다.

이번 올림픽에서 김동성과 전이경에게 극적으로 금메달을 안겨준 '날 들이밀기' 가 전감독이 개발한 기술이다.

어리고 연약한 여자선수들에게도 쇠조끼를 입힌채 강훈을 시켜 우리선수들이 체격이 월등한 외국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전감독이 이처럼 쇼트트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 하수경 (29.스포츠TV 기자) 씨의 내조가 컸다.

88서울올림픽 당시 수영 싱크로나이즈드 한국 대표로 참가한 바 있는 하씨는 남편이 1년중 절반 이상을 태릉선수촌에서 보내는 데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전감독은 22일 선수촌에서 짐을 꾸리면서 "이번에는 세림이와 오래 같이 있어줘야지" 라고 다짐한다.

그동안 딸의 얼굴을 세번밖에 보지 못해 발가락이 예뻤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그러나 뜻대로 안될 듯 싶다. 오는 3월 중순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해 오는 26일부터 또다시 태릉선수촌 합숙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가노 = 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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