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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 몸 낮춰야 노사 신뢰 싹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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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근로자들은 왜 경영진에 맞서 투쟁할까? 산업혁명 이후 개인과 자본주의 기업의 관계에서 개개인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은 자신의 의견이 정당하게 처리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생존권을 위협받기도 했다.

각 개인은 조직과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절감했다. 그 나약함을 극복하는 대안은 또 다른 조직(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개인은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기업이란 조직을 대변하는 경영진에 맞서왔다. 합리적인 대화로는 자신들의 주장이 소홀히 되거나 무시된다고 생각될 때는 파업을 비롯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개인과 조직'의 관계가 '조직과 조직'의 관계로 수준을 달리했지만 여전히 노사는 마주앉아 합리적으로 토론하지 못한다. 자연히 문제의 해결 과정은 소모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사 간에 자신들의 주장이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논의되려면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상대방이 이해하고 고민한 다음에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토의와 협상, 그리고 타협이 가능하다.

노사 간의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신뢰는 투쟁과 대결 끝에 극적인 타협점을 찾아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한다고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구축하려면 첫째로 구성원들이 경영진을 믿고 의존할 수 있다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증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하기에 훌륭한 포천 100대 기업들은 정직과 성실을 중요한 도덕적 가치기준으로 내세우면서 정보 공유를 비롯한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평소 경영진과 관리자를 대하는 게 불편하다면 대화는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일류 기업들은 관리자와 임원들에게 구성원들을 파트너로 인식하면서 이들에게 자세를 낮출 것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일상 업무현장에서 신뢰를 구축하려면 개개인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리더의 행동이 요구된다. 일상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사는 구성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에서 성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상사는 구성원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 일이 얼마나 잘됐는지 평가하는 소극적 관리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이 맡은 일에서 성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셋째, 기업에서 상하 간에 신뢰도를 높이려면 상사의 관리행위가 공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관리자와 임원은 업무의 배분 조정, 나아가 인사평가 자체를 공정하게 해야 한다. 또한 회사 차원에서는 이익을 냈을 때는 그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하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1925년에 설립된 미국의 펠라 윈도라는 회사는 7400여명의 구성원이 일을 하고 있다. 이 회사에는 스톡옵션이 없지만 구성원들은 불만이 없다. 구성원들은 회사가 이익을 냈을 때는 '늘'그 성과를 전체 구성원과 공정하게 나누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사는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이 회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의 방침에 협조하면서 신바람나게 일하는 그런 기업을 원한다. 단순히 임금을 올리고 복리후생제도를 하나 더 만든다고 업무현장에서 노사 간에 신뢰가 구축되고 일하기에 훌륭한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경영진과 관리자가 일상 업무현장에서 구성원들이 믿고 의존할 수 있는 행동을 일관성 있게 보이고, 구성원들을 존중하면서 공정하게 업무를 관리해갈 때, 시간과 더불어 조금씩 축적되는 것이 신뢰다. 이러한 신뢰는 노사 간의 상생은 물론 기업의 성장과 번영을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경영자산이다.

이관응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