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문] 슬픔과 기쁨이 넘쳐났던 장례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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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강대 성당에서는 고 장영희교수님의 장례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미사 강론에서 신부님은 카힐 지브란의 시 "눈물과 미소"의 마지막 귀절을 읊으셨습니다. "슬픔의 산을 뒤덮은 구름을 지나 환희의 평원에서 죽음의 한줄기 바람을 맞이하여 왔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 가리"

장영희 교수님은 평소 본인의 소망대로 '유명한 교수가 되기보다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소망을 이루신 것 같습니다. 장례식 기간에 찾은 2000명에 달하는 조문객 가운데 대부분은 젊은 제자 학생들이었고, 그들은 정말 서럽게 울고 갔습니다. 재단 이사장 신부님은 장 교수님이 우리에게 다시 깨닫게 해주신 교육의 정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교육의 중심은 지식의 전달과 함께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장 교수님이 이런 사랑의 문양을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새겨주고 떠나셨다고."

장 교수님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장교수님은 누구보다도 세상을 사랑하셨던 분이었습니다. 항상 소녀의 호기심으로, 그리고 경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분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해 하시고 아름다운 면만을 보시려고 노력하셨던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똥파리를 보고서도 그 파란 색갈이 어쩌면 저리 이쁘게 파라냐고 하셨던 분이었으니까요. 저에게는 지금도 더러운 똥파리는 똥파리일 뿐인데요.

장 선생님을 떠나 보낸 제자들은 많은 글을 학교 홈페이지에 남기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한번도 뵌 적이 없고 수업을 들은 적도 없지만 그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서강대 학생임이 자랑스러웠어요" 라고 글을 남겼고, 다른 학생은 "선생님 수업을 듣던 첫날, 목발을 집고 당당하게 강의실에 들어오시던 그 모습이 생생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가 서강대학교 학생임이 너무 좋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사랑합니다. 항상 샘터 글에서 제 영혼의 지킴이가 되어주셨던 장영희 선생님. 선생님이라는 말이 진정으로 잘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 ! 저도 이젠 선생님이지만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군요" 하고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새삼스레 존경함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의 우리 존재에 부끄러움과 겸손함을 느끼게 해주시는 분이었읍니다. 제자 중에 앞을 잘 못보고 잘 듣지 못하는 장애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경상도 안동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시골에 두문불출 방에 쳐박혀있었습니다. 장 선생님은 그 불편한 몸을 이끄시고 5시간 이상 운전해 두 번이나 이 학생을 찾아가 설득해 서강대에 입학시켰습니다. 이 학생은 자기가 장영희 교수님과 아주 친하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대통령 빽이 있어도 그렇게 자신만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학생은 장 교수님을 실은 운구차량이 학교 교정을 떠날 때 하염없이 쳐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누가 당신이 남긴 그 큰 빈자리를 메꿀수 있을까요. 이제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장 교수님의 이름은 영희입니다. 철수와 영희의 바로 그 이름입니다. 저도 이제야 그 이름이 새삼스레 다가왔습니다. "영희야 ! 나와서 놀자" 하는 우리 친구 영희입니다. 서강대 손병두 총장님은 추모사 끝에 "친 여동생이 죽은 것 같다"며 "영희야!" 하고 크게 말한 후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슬픔 뒤에 가슴 속 깊이 솟아나는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그 희망이었습니다. 그것은 실패의 죽음이 아니라 승리의 죽음이었기 때문이었읍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과 기쁨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죽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주고 떠나신 것입니다. 이제는 마음껏 두 다리로 하늘나라에서 힘차게 달리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서강대 경영대학 전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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