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끝장이다” 무서운 중국 네티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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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의 최대 정치세력은 바로 네티즌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억9800만 명으로 조사됐다. 7000만명이 넘는다는 공산당원의 4배에 달하는 숫자다. 중국 네티즌의 장기는 바로 ‘인육수색(人肉搜索)’으로 불리는 놀라운 사람 찾기 능력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 비밀까지 모두 들춰내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의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어 문제다. 지난 8일 쓰촨(四川)성에서 발행되는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는 한 여성을 자살기도로 몰고 간 인육수색의 폐해를 고발하는 기사를 실었다. 다음은 기사 전문이다.

지난 5월 5일 네티즌 치피랑(漆皮狼)은 ‘젊은 여성, 길 한복판에서 노인 뺨 수 차례 때려’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 글에 따르면 오후 6시경 싸이창(賽場)거리에서 양꼬치를 파는 노점상 양(楊)씨 노인이 삼륜차로 싼궁제(三公街)로 가던 중 번호판도 달지 않은 채 마주 오던 백색 치루이(奇瑞) 차량과 마주쳤다. 좁은 길목에서 마주친 두 사람 중 노인 양 씨가 여성 운전사에게 "먼저 지나가라"며 비켜섰다. 젊은 여성 운전자는 노인에게 조금만 더 비켜달라고 했지만 노인은 공간이 충분하니 그냥 지나가라고 말했다.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 시비가 발생했다. 조금 뒤 화가 난 여성이 차에서 내려 노인의 뺨을 때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이 여성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여성의 차를 가로 막고 노인에게 사과하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할아버지가 먼저 욕을 하고 때렸다며 사과를 거부했다. 약 30분 후 여성의 차량 주변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모두 그녀의 잘못을 추궁하며 사과하라고 몰아세웠다. 7시쯤 경찰이 두 사람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오면서 약 한 시간 가량 마비되었던 그 지역 교통은 정상을 회복했다.

'인육수색' 발동: 여성의 전화번호, 주소, ‘신체 사이즈’까지 밝혀져

5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이 글이 게시되자 네티즌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네티즌 ‘scpacl’이 ‘인육수색’을 시작하자고 제안하자, 네티즌 ‘chinawinter’가 이 여성을 알고 있다며 그녀가 거주하는 동네 이름을 밝히면서 네티즌들의 본격적인 ‘인육수색’이 시작됐다. 이어서 그녀의 메신저 주소 및 직장주소, 실명, 키, 체중, 학력과 전화번호까지 모조리 공개됐다.

네티즌들의 수색은 거침없이 계속됐다. 마침내 그녀의 상세 주소지 및 홈페이지에 저장된 상반신노출 사진까지 공개됐다. QQ홈페이지에 공개된 프로필에 의하면 그녀는 모델학과를 졸업한 뒤 사진관 모델로 활동 중이었다. 이 때문에 그녀의 노출사진 및 신체사이즈 등이 인터넷에 모두 폭로됐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홈페이지 방명록에는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라”는 글로 도배됐다.

사람들의 질타 받느니 차라리 죽겠다…자살기도로 몰고 간 인육수색

7일 오전 그녀의 어머니는 화서도시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며칠 동안 딸을 욕하는 전화가 빗발쳐 일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딸이 부유한 집안환경에서 자랐다는 등의 인터넷 루머 등은 모두 거짓"이라며 “오늘 아침 딸애가 자링(嘉陵)강에서 자살을 기도했다가 아버지가 구해 집으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한편 그녀는 “그 할아버지께 세 번이나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할아버지의 뺨을 때렸지만 바로 잘못을 뉘우쳤고요. 사람들 모두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말에 무릎을 꿇었고 경찰이 일으켜 세웠어요”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인정하지만 왜 무릎 꿇은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자신을 대변해 줄 사람은 아무도 나서지 않는지 답답했다.

네티즌들도 '쾌락의 잔치' 끝낸 뒤에야 반성

이틀간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이 사건으로 인해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반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번와얼(奔娃)’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이 번 일은 한바탕 쾌락의 잔치와 같았다. 과연 언제까지 계속 할 것인가? 시작부터 이성적이지 못했다. 사건의 진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 한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모조리 공개했다. 정의라는 이름만을 앞세워 그녀를 이런 식으로 몰아간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란 반성의 글을 올렸다.

도 넘은 ‘인육수색’ 최소한의 기준 마련해야

난충시 인민대표대회 대표 겸 쓰촨 시민 변호사 사무소 소장인 랴오단(廖丹)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네티즌들이 자신을 단순한 ‘운반인’으로 여기면서 그 여성의 홈페이지에 있는 사적인 자료를 인터넷상에 옮겼다. 이들은 그런 행위가 ‘권리 침해’ 라 여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홈 페이지 역시 사적인 공간이므로 주인의 동의 없이 자료를 옮기는 것은 ‘권리 침해’ 혐의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이 공개한 여성의 자료를 볼 때 이는 프라이버시 침해에 해당하며, 어디에서 이런 정보를 얻게 되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육수색에도 남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번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한 사람을 몰아세워 사과 및 진상규명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인터넷 폭력임과 동시에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동시에 관련 글이 게재됐던 사이트 운영자는 인터넷 폭력과 권리 침해 행위인 악성 댓글을 막는 기술적 조치를 취해 가상세계가 현실생활에 피해를 주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우경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kysun.s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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