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왜 안떨어지나…기업외채·인도네시아 사태로 멈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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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환율이 떨어지지를 않고 있다.

연말에 달러당 2천원대까지 치솟았던 환율이 IMF긴급지원소식에 한때 1천4백원대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다시 올라 한달반이 지난 지금도 1천6백원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연말에 비하면 외환사정이 많이 나아졌는데도 그렇다.

우선 국가부도 소리는 더이상 없다.

IMF의 금융조건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믿음도 나라안팎으로 확산되었다.

또 최근에는 한국정부와 해외의 채권금융기관간에 만기연장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됐다.

게다가 경상수지도 3개월째 흑자를 보였다.

그 결과 한동안 한국을 외면했던 국가신용평가기관들도 한국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정했거나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환율은 게걸음이다.

왜 그럴까?

◇ 국제금융여건이 불안하다 = 동남아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의 부도조짐에 한국까지 불안해 한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물린 돈이 많기 때문이다.

단일국가로 한국에 제일 많은 돈을 꿔 준 일본의 금융불안도 한몫을 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의 한상춘 (韓相春) 박사는 “일본은행들은 최근의 금융비리사건뿐 아니라 3월 결산때문에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채우려고 대출자금을 회수해야 할 입장” 이라고 한다.

한국지원은 일본정부의 입장일 뿐, 일반은행들은 한국에 꿔 준 돈도 돌려받아야 할 상황이다.

경쟁국의 환율움직임도 중요하다.

지금은 안정되어 있지만 엔화나 중국의 위안화가 절하되는 날이면 원화환율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 사회적 불안도 환율안정에 걸림돌이다 = 나라안이 뒤숭숭한 것도 환율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일단 파업은 피했지만 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의 합의를 거부하고 나섰던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직 파업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데다 이 사안이 “한국의 구조조정이 순조롭지 않을 것” 이라는 신호로 여겨진 것이 더 큰 문제다.

노사정 합의 직후에는 활발하게 재개되던 외국자본유입이 지금은 주춤하다.

◇ 한국은행이 달러를 풀지 않는다?

=외환보유액을 높이기에 급급, 한국은행이 달러가 들어오는 족족 쌓아놓기만 하고 외환시장에는 달러를 내놓지 않아서 환율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은행은 펄쩍 뛴다.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면 환율이 더 올라가는데 환율안정을 바라는 한국은행이 왜 그러겠냐” 는 것이다.

오히려 국제기구에서 지원받은 달러조차 시장에 내놓았다고 주장한다.

◇ 민간기업의 외채상환이 어려울 것이다 =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에도 놀란다” 더니, 나라가 부도위기를 넘기고 금융기관들이 부도위기를 넘겼다고 하니, 이제는 기업이 외채부도위기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새로 밝혀진 기업의 대외채무는 7백36억달러다.

민간기업의 대외채무상환압박은 최근 환율안정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시중 소문처럼 심각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른바 '3월위기설' 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의 이런 소식은 일본 등 해외에서도 서울발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기업의 대외채무 불안에는 정부가 뉴욕의 외채상환연장협상에서 금융기관의 외채에 대해서만 지불보증을 해 준 것도 한몫을 했다.

연초에는 90% 수준을 유지하던 건실한 대그룹에 대한 만기연장율이 지금은 80% 수준으로 오히려 떨어졌다고 한다.

KDI의 김준경 (金峻經) 박사는 기업의 만기연장율이 떨어진 것은 “기업신용이 떨어져서라기 보다, 한국 전체에 꾸어줄 자본규모는 정해졌는데 그 대부분을 금융기관 만기연장하는데 소진해 버렸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 도산위기에 몰린 한국기업이 많다 = 한국기업이 외환부도위기를 넘겼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나라안에서 꾼 돈이 많아 '국내부도위험' 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의 총채무는 96년말 기준으로 GDP의 1.9배에 이른다.

이는 어느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기업의 과다채무가 해소되기 전에는 한국기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 힘들어, 외국금융기관들이 한국기업에 달러를 꿔주기를 꺼릴 것” 이라는 것이 김준경박사의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환율안정은 기대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權純旴) 박사도 “고금리때문에 기업의 부실화와 부도를 걱정하기 때문에, 주식매입외의 다른 채널로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고 분석한다.

◇ 환율상승과 물가간의 악순환때문이다 = 환율이 올랐다고 물가가 오르면, 물가상승을 이유로 다시 환율이 오를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는 환율상승을 이유로 한 물가상승세가 수입원자재부터 시작해 점차 여타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당분간은 환율이 크게 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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