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은 "21세기 노다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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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력 (?) 있는 자가 세상을 휩쓴다. '

미생물, 단 하룻밤만에 수백만마리의 자손을 번식시키는 이 미물 (微物) 중의 미물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항암.항생제등 의약품 시장은 물론 농약.식품첨가물.폐수처리.에너지생산 분야등에서 미생물의 전방위 활약은 가히 폭발적이다.

미생물산업시장의 규모가 이를 대변한다.

80년대초만해도 이 분야의 세계 시장규모는 1백억달러에 훨씬 못미쳤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2백억달러 (추정)에 이르더니 2000년에는 최소 5백억달러, 최대 1천3백억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674년 현미경을 통해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레벤 훅도 아마 20세기가 이런 '미생물 세상' 이 되리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 미생물이란 곰팡이.박테리아.바이러스등 주로 1개의 세포로 된 생물을 일컫는다.

미생물들이 이처럼 성가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뛰어난 번식력과 생존력때문. 최근 세제회사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저온 (低溫) 미생물' 과 '고온 (高溫) 미생물' 이 대표적인 예. 이들은 각각 섭씨 0도, 1백도 안팎에서도 끄떡없이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보통 30~40도를 벗어나면 생장을 멈추는 보통 미생물과는 한참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제일제당.LG 등은 저온.고온 미생물이 분비하는 '때 벗기는 효소' 를 세제에 첨가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성공한다면 찬물.뜨거운 물을 가리지 않고 세탁효과는 만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연규 (柳然圭) 박사는 "저온.고온 미생물도 옛날에는 평범한 미생물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 같은 극지나 화산 근처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남다른 능력이 생긴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재 태평양 바다속의 열공 (熱孔.해저에서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구멍)에서 유래한 미생물을 키우고 있다.

이중 '파이로코커스 퓨리어서스' 는 섭씨 98도가 최적의 생장온도다.

또 미생물 중에는 중금속같은 독성물질이 많은 폐수 속에서 살아야하는 것도 있다.

이런 미생물은 독성물질을 무해한 물질로 분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폐수처리장에서 살포되는 미생물들이 바로 이런 종류다.

한국해양연구소는 수년전 석유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찾았다.

이 미생물은 해상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데 쓰인다.

생명공학연구소 민태익 (閔泰益) 박사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세상에 미생물이 못하는 일이란 없다.

그러나 물론 이를 대량생산으로 상용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고 말한다.

철을 먹어치우는 미생물이 금속제련에 쓰인다든지, 메탄가스나 수소를 방귀로 뀌는 미생물이 에너지 생산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게 이용되는 미생물도 최근들어 급속히 발달한 유전공학이 없었다면 이처럼 빛을 보지는 못했을 것. 세계적 화학회사인 뒤퐁이 최근 개발중인 거미줄섬유 역시 유전공학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뒤퐁은 거미의 몸에서 거미줄을 만드는 유전자를 꺼내 미생물의 유전자에 이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미줄은 기존의 섬유와는 달리 물을 흡수하면 줄어들 더러 겹겹히 엮으면 총알도 막아낼만큼 강도가 뛰어난 꿈의 섬유로 부러움을 사왔다.

유전공학을 통해 직간접으로 미생물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도 드물다.

병원.약국에서 팔리는 50여종 안팎의 항생제중 약 80%는 미생물에서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 김선창 (金善昌) 교수는 "항생제 한 종류의 세계시장이 적어도 연간 수천억원 규모다.

최근 미생물 연구가 불붙는데는 신물질 하나만 개발해도 돈방석에 올라앉을 수 시장여건이 조성돼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세계 도처에서 인류의 손길 (?) 을 기다리고 있는 미생물은 줄잡아 1백만종. 이중 발견된 것이라야 5%를 넘지않는 수준이고, 이 가운데 활용되고 있는 미생물은 10%도 채안되는 실정이니 21세기의 '미생물 노다지 찾기' 는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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