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을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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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을 만나다

우울한 장면을 많이 그린 까닭은?
실제 존재하는 이웃을 표현하고 싶었죠

‘돼지책’‘고릴라’의 작가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63)이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앤서니 브라운은 우리나라에서 엄마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1위로 꼽힌 바있다. 지난 2일 중앙일보 어린이 일일 기자단이 앤서니 브라운을 만나 인터뷰했다.

프리미엄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Q. 돼지책’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지?
A : 실제 모델이 된 가족이 있다. 이웃에 아이 둘을 둔 가족이 있었는데 ‘돼지책’에나오는 것처럼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듯했다. 책이 완성된 후 그 가족에게 책을 직접 선물했다. 책의 결말을 보고 그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되기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족은 ‘돼지책’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웃음). 또 나도 어린 시절엔 ‘돼지책’에나오는 아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형이 하나있는데 우리 형제의 어린 시절 모습과 책의형제가 아주 흡사하다.

Q. 항상 행복한 여타 그림책들과 달리 등 돌리고 있는 아빠, 무표정한 엄마 등 우울한 가족을 주로 그리는 이유는?
A : 현실에 가깝게 그리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가족이든 늘 행복할 수만은 없다. 화내고 짜증내고, 서로간 갈등할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늘 웃기만 하는 환상 속에 존재하는 가족보다 현실에 존재하는 가족을 표현하고 싶었다.
 
Q. ‘동물원’ 중 철창 안에 인간 가족이 갇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장면이 있다. 이 모습이 나타내고자 하는 뜻은?
A : 동물원의 동물이 됐을 때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하길 바랐다. 작품 때문에 동물원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철창에 갇혀 있는 동물들의 모습이 슬퍼보였다.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갇혀 있는 동물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당신의 책에는 고릴라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릴라인가?
A :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인간’이다. 그 다음으로 고릴라와 침팬지를 들 수 있겠다.
 
Q. 어린이 기자단에게 들려주고 싶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A : 실제로 고릴라 우리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고릴라’ 출간기념으로 방송 촬영이 예정돼 있었는데 고릴라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을 미리 연습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국 관계자들이 오기 전에 혼자 고릴라 우리에 들어갔다. 고릴라 한 마리가 내 곁에 와서 강아지처럼 킁킁대며 내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엄청나게 센 힘으로 내 다리를 잡고 우리한가운데로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는 날 꿇어앉히고 머리카락을 헤집어 이를 잡아주는 시늉을 하고 얼굴을 더듬고 목을 만져보는 등 친밀한 행동을 했다. 굉장히 놀라고 신났다.
 
그런데 이때 방송국 관계자가 도착해서우리 속의 날 보고 매우 놀랐다. 고릴라들도 그들을 보자 우리의 창살을 흔들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고릴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창살 틈으로 분홍색의 어떤 물체를 던졌다. 뭔지 궁금해 자세히 보려는 순간 고릴라 한 마리가 흥분하면서 내 다리를 꽉 물었다. 피가 엄청나게 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릴라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향이 나는 꽃이었고, 내가 그것을 뺏으려는 줄 알고 경고의 의미로 내 다리를 문 것이다. 아직도 고릴라가 좋지만 앞으로 우리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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