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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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살아갈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필가이자 번역가인 장영희(사진)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가 긴 암 투병 끝에 9일 오후 별세했다. 57세.

소녀 같은 감성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글을 썼던 그에게 시간은 가혹했다. 그는 세 번째 찾아온 암과 싸우는 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책을 엮었다.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생애 마지막 저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출간됐지만 의식을 잃은 그는 끝내 책을 보지 못한 채 하늘 길로 떠났다.

이 책 에필로그에서 그는 “위대한 힘을 믿고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고 적었다. 온몸에 퍼지는 암 세포를 이겨내고 다시 한 번 일어서리라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봄은 왔으되 희망은 멈췄다. 볕 좋은 5월 봄날 그는 ‘삶의 기적을 함께 나누고 싶다’던 독자와 벗들을 뒤로 하고 떠났다.

그에게 세상은 온통 희망이고, 감동이고, 아름다움이었다. 그의 영문학 강의에선 늘 꿈의 향기가 진동했다. 사실 그는 꿈과 희망을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갓난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사회적 분류에서 그는 ‘1급 장애인’이다.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선 한 발도 내딛을 수 없었으므로 열패 의식에 사로잡혔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 정상-비정상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장애인으로서 겪은 체험을 절절한 언어로 버무려 오히려 비장애인을 위로했다. 그는 수필과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곳인데 절망할 게 뭐냐”고 강변했다. 그는 『내 생애 단 한 번』이란 수필집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들 각자가 저자인 삶의 책에는 절망과 좌절, 고뇌로 가득 찬 페이지가 있지만 분명히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가슴 설레는 꿈이 담긴 페이지도 있을 것이다.”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은 그의 글에 환호했다. 특히 그 자신이 장애를 지녔음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모습에 재소자나 입원 환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리 시대 ‘희망의 전도사’였다.

하지만 암 세포가 거듭 그를 덮쳤다. 2001년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완치됐지만 2004년 다시 척추암 선고를 받고 글쓰기를 중단했다. 주변에선 그를 향해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는 말이 나왔다. 정작 자신은 ‘천혜(天惠)의 삶’이라며 희망을 붙잡았다. 그는 척추암 투병중이던 2005년 강단으로 돌아왔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란 수필집을 냈고 강의도 열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암 세포가 간으로 전이되면서 캠퍼스를 떠났고 결국 이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고인 생전에 자매처럼 지냈던 피아니스트 신수정씨는 “내 생애 단 한 번의 감동으로 다시 그의 글을 읽는다. 어느새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그이처럼 나도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고 추모했다.

장 교수는 아버지(고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 영문학자가 됐다. 1975년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85년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고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한국번역문학상과 올해의 문장상 등을 수상했다. 독신이며 유족으로 모친 이길자 여사와 오빠 장병우 전 LG오티스 대표, 언니 영자씨와 여동생 영주·영림·순복씨 등 네 자매가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9시. 13일 서강대 교정에서 장례 미사 뒤 선친이 잠든 충남 천안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02-2227-7550.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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