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박근혜 방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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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2면

박근혜답다. 고뇌할 때는 유연하다. 그리고 결심한다. 그 순간 박근혜의 방침은 벽이 된다. 허물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엔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가 그 벽을 실감하고 있다. 박희태는 자신의 비서실장(김효재 의원)을 미국에 급파했다. 그를 통해 박근혜에게 화합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안’의 사전교감 부족에 대한 양해를 얻으려 했다. 절박한 성의표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외면했다. “절차 문제가 아닌 원칙 문제”라고 벽을 더 쌓았다. 박근혜는 처음엔 미소로 간접 해명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곤 냉담과 침묵을 섞어 반응했을 것이다. 그게 박근혜 정치의 일관성 관리 장면이다. 그가 거부한 이유는 간결하다. “원내대표 추대는 당헌·당규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의원 총회의 선거로 뽑는다. 김무성이 자신의 친박계 좌장이건, 화합카드건 경선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치 게임은 명분 선점 경쟁이다. 박근혜 언어의 감수성은 말 꾸미기를 싫어한다. 원론적이고 한마디 형태다. 명분에 담긴 원칙이 단순할수록 게임의 주도권을 갖는다.

이명박 대통령(MB)은 난감하다. ‘김무성 카드’는 박희태의 승부수다. 박희태는 그 방안을 박근혜가 받을 것으로 믿었다. MB는 박희태의 판단을 수용했다. 그 카드는 의회 권력의 분점이다. 그래서 MB는 “이제 계파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 말은 성급했고 허를 찔렸다.

그 카드의 제시 과정은 서툴렀다. 4·29 재·보선에서 0 대 5 패배의 사정은 심각하다. 한나라당의 경주 패인은 공천 실패 때문이다. 총선에 낙선한 후보를 다시 친박 무소속과 맞서게 했다. 경제 살리기(인천 부평을) 구호도 먹히지 않았다. MB국정의 브랜드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렇다면 당 대표부터 대변인까지 집단 사표를 냈어야 했다. 그런 뒤 재신임을 받을 수 있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선거다. 선거 패배에 대한 자책과 자성은 정치적 의무다. 당 지도부는 국민을 향한 통과의례를 대충 치렀다. 그리고 쇄신과 화합을 거론했다. 김무성 카드를 탕평인사로 내세워 이슈 전환을 시도했다. 그 서두름과 생략은 어설펐다. 박근혜 원칙의 정치가 개입하는 근거와 빌미를 제공했다.

‘김무성 원내대표안’은 친이 핵심의 합작품으로 비춰진다. 그 카드는 박희태 대표를 선거 참패의 책임론에서 멀어지게 해준다. 이재오 전 의원의 원만한 정치복귀는 박근혜계의 양해를 필요로 한다. 이상득 의원은 경주공천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에다 김무성 의원의 의욕이 가세했다. 그는 친박의 간판 못지않게 자기 정치의 의욕을 갖고 있다. 정치는 이런 이해관계의 산물이다. 그러나 의무적 절차를 생략하면 밀실 거래의 냄새를 풍긴다. 박근혜는 자기를 소외시킨 ‘김무성 카드’의 배경을 불신하고 있다. 그 속에는 친박계에 대한 각개격파라는 의심도 있는 듯하다.

친이계 의원들은 분통을 터뜨린다. “매몰찬 원칙, 대안 없는 뒷다리 잡기”라고 박근혜를 성토한다. 하지만 주도권을 잡으려면 판을 크게 벌여야 한다. 조기 전당대회가 그 방법이다. 전당대회는 계파 대결의 무대다. 그 때문에 박근혜와의 결별, 분당까지를 각오해야 한다. 그 선택은 쉽지 않다. 더구나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의 평판은 위력적이다.

현상유지는 피곤하다. 국민의 인내심도 고갈되고 있다. MB와 박근혜는 국정 동반자다. 대선 때 지지자들이 설정해준 관계다. 관계 유지의 수단은 권력분점과 협력이다. 박근혜의 협력은 MB 국정의 중요한 추진력이다. 이명박 정권의 성공은 박근혜의 차기를 뒷받침한다. 두 사람이 만나 갈등을 풀 수밖에 없다. ‘불편한 동거’는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다. 동반자 관계의 근본적 재설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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