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과 서민에 위화감 주는 정치가 패배의 원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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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11면

한나라당이 연일 시끄럽다. 4·29 재·보선에서 0대5의 참패를 당하면서다. 초선 의원 14명으로 구성된 ‘민본21’은 당·정·청의 전면적인 쇄신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본21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식(51·사진) 의원을 8일 의원회관에서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들어봤다.

한나라 0대5 참패, 쇄신 요구한 ‘민본21’ 간사 김성식 의원

문제 없다는 참모야말로 인적 쇄신 대상
-재·보선 참패 원인은 뭐라고 보나.
“근본적으로는 중산층과 서민에게 위화감을 주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념 편향적으로, 밀어붙이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다 보니 국민들의 피로감만 쌓였다. 대표적인 게 다주택 양도세 완화 논란이다. 이 사안은 지난 연말에 이미 상당 부분 완화했던 건데 굳이 왜 4월 국회 때 또다시 들고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너무 추상적이고 단정적인 진단 아닌가.
“국민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번 재·보선 때도 부평을 지원 유세를 나갔다가 ‘나라가 위기일 땐 어려운 사람을 먼저 도와야지 왜 가진 자들만 챙기느냐. 부자 정당 소리 들어도 싸다’는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

-이명박 정부, 뭐가 문젠가.
“민심에 바탕을 두지 않고 일방통행 식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너무 진보 편향적이었다면 지금은 되레 보수 편향적이다. 과거엔 386 편향이었다면 지금은 편협한 인사풀이 문제다. 노무현 정부를 왜 싫어했나. 오만과 독선 때문 아니었나. 그런데 이명박 정부도 보아하니 방향만 정반대였지 하는 건 비슷하네, 국민들이 이렇게 판단하는 거다. 당초 공약했던 ‘중도 실용’은 어디로 갔느냐는 거다.”

그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논리는 명쾌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진단은 계속됐다.
-쇄신 요구에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의도적 외면이랄까.
“국정 기조를 바꿀 필요가 없다, 재·보선 하나 치른 것 가지고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렇게 말하는 청와대 참모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 그분들이야말로 인적 쇄신 대상이다. 그렇게 말하는 청와대 관계자의 멘트는 열린우리당이 재·보선에서 40대 0으로 졌을 때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했던 말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다. 국정 기조를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었거나 직언을 제대로 못한 참모,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은 참모는 더 이상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

-이 대통령이 문제인가, 참모가 문제인가.
“대통령은 언제나 일 중심으로 생각하게 돼 있다. 문제는 참모다. 정책적 균형 감각을 갖고 직언할 수 있는 참모가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당정 협의 없이 논란이 될 게 뻔한 정책을 덜컥 내놓으며 국회를 무시한 장관, 상임위장에서 국회 비하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은 장관은 본인 보신을 위해서라면 모를까,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

-공식 참모뿐 아니라 비선 라인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국민들 눈높이에서 보면 형님 논란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역할 조정을 하는 게 그분이나 대통령 모두에게 좋지 않겠나.”

-한나라당에도 책임이 있지 않나.
“물론이다. 모든 걸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민심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에는 사실 한나라당 책임이 더 크다. 나 김성식에게도 책임이 있다. 쓴소리해야 할 때 용기가 부족했다. 이제라도 한나라당이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춰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다. 쇄신의 키워드도 바로 민심이다.”

김무성, 당당히 원내대표 경선 나서야
-속도전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웬만한 건 상임위에 맡기면 되는데 당론으로 무리하게 밀어붙이니 당연히 야당은 반발하고 파열음만 커지면서 될 일도 안 됐다. 농협개혁법을 보라. 상임위에 맡겨놓으니 여야 합의로 훌륭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지난 연말 종부세법도 그렇다. 모두가 걱정했지만 상임위에서 밤샘토론을 거듭하다 보니 여야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이 도출됐다. 숫자의 정치는 정당성의 정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친이-친박 갈등이 여전한데.
“친이 주류 측은 속 좁은 정치를 하고 박근혜 전 대표 측은 너무 방관적이란 비판이 있다. 정치력 부족과 책임감 결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장에 나가 보면 ‘대선 끝난 지 1년 반이 됐는데 아직도 친이-친박 싸움만 하느냐’는 얘기를 귀가 닳도록 듣는다. 내부에서 그렇게 싸우면서 무슨 국민 통합을 얘기할 수 있느냐는 지적엔 정말 할 말이 없다.”

-해법은 뭔가.
“이 대통령 스스로 ‘박 전 대표는 정권을 만든 동반자’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실제로 국정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박 전 대표도 지금까진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란 말이 일리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당의 화합과 쇄신을 위해 적극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보나.
“그렇다. 당당히 경선에 나서서 비전을 제시하고 의총을 통해 검증받으면 된다. 그게 정석이다. 사실 우리도 4일 회견할 때 김무성 카드가 부각될 것이고 박 전 대표는 부정적 반응을 보일 것으로 나름 예상했다. 진정한 화합이 전제되지 않고 김무성 카드가 성사되겠나. 하지만 여전히 탕평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이라는 데 많은 의원이 동의하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6일 이 대통령과 만나 ‘면목 없다’고 했다.
“일방적인 당·청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당대표는 대통령에게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는 창구가 돼야 하는데 재가받는 듯한 모습은 부적절했다.”

-그렇다면 쇄신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쇄신? 너무 우편향으로 간 걸 중도 실용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밀어붙이기에서 탈피해 여야 대화와 의사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게 민주화시대 보수 정당이 가야 할 길이다. 그러려면 인적 쇄신이 선행돼야 한다. 만천하의 인재를 초정파적으로 등용할 때다.”

-당 개혁은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고 보나.
“과연 보수 정당이 정치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없다는 게 문제다. 고용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서민을 어떻게 껴안고 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없다. 비스마르크도 보수주의자였지만 독일 복지사회의 토대를 완성했다. 진보적 어젠다를 적극 끌어안고 보수적 방향으로 풀어 가야 한다. 좌냐 우냐를 놓고 다투는 것만큼 시대착오적인 것도 없다. 미국과 유럽을 보라. 모두가 중간지대로 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만 왜 거꾸로 가려고 하나.”

이번에 실패하면 10월 재·보선서 또 당해
-쇄신특위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용두사미랄까, 찻잔 속의 태풍이랄까.
“왜 우여곡절이 없겠나. 정치에도 기득권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부정적 전망을 부정하진 않겠다. 현실을 호도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호주머니에 기득권이 없다. 치열하게 논쟁하고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개적으로 경쟁해 나갈 것이다. 그래야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을 걷어낼 수 있다. 세상에 치열함 없이 되는 일은 없다.”

-여권 내부에선 단계적 쇄신론, 속도조절론 얘기가 많이 나온다.
“쇄신은 단계적으로 할 수 있겠지만 그 폭은 전면적이어야 한다. 지금의 당 지도부가 잘하겠지만 계속 소극적으로 나간다면 용퇴론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상황이 이런데 빨간약만 바르고 끝낼 순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국민이 공감할 만한 모판을 새로 짜는 데 집중할 것이다. 세 불리기는 중요하지 않다. 시대정신을 쥐고 갈 것이다. 두고 보라. 이번에 제대로 쇄신을 안 해 10월 재·보선에서 또 지면 지금 ‘쇄신은 무슨 쇄신’이냐며 외면하는 사람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높일 거다. 열린우리당이 재·보선 치르며 숱하게 반복했던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어서야 되겠는가.”



김성식 의원은
▶부산 출생 ▶부산고·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 ▶대학 2학년 때 유신철폐 시위로 구속 ▶1990년 김문수·장기표 등과 민중당 참여 ▶93~94년 CBS 등에서 시사평론가로 활동 ▶97년 고 제정구 의원 따라 한나라당 입당 ▶2003년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 ▶2004~2006년 손학규 경기도지사 밑에서 정무부지사 ▶2008년 18대 총선(서울 관악갑) 당선 ▶2008년 백봉신사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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