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저버리지 않은 배우들의 ‘외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3호 07면

지난달 말 시작한 SBS 드라마 ‘시티홀’과 KBS ‘그저 바라보다가’는 톱스타급 영화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라는 공통점이 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야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영화배우가 나오면 확실히 다른 존재감과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에 처음 나오는 황정민이나 오랜만에 돌아온 차승원·김아중 등의 연기에 더 큰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KBS)의 황정민·김아중, ‘시티홀’(SBS)의 차승원·김선아

‘시티홀’은 차승원과 김선아의 코믹 연기 콤비 플레이가 돋보인다. 한 소도시의 시청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권력 다툼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다뤘다. 현 시장의 비서 역할을 맡은 10급 공무원 역할의 김선아와, 대통령 자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야심만만한 부시장 역의 차승원은 옷을 몸에 꼭 맞게 차려입은 사람들처럼 말쑥한 코미디를 펼쳐 놓는다. 같은 대사라도 콧소리를 섞고 억양을 다르게 해 유머 지수를 높이는 김선아의 연기는 ‘삼순이’부터 꾸준히 이어진 것. 진부함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이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다진 그의 연기는 대체 불가다.

여기에 시니컬한 이미지를 가진 차승원의 반응 연기가 일품이다. 매사에 오버하는 김선아에 대해 싸늘하고 능청맞게 비웃거나 여자에게 뒤통수를 맞고 황당해하는 표정 등에서 폭소가 터진다. 넘어지는 김선아의 가슴을 차승원이 움켜쥐거나, 수영복 차림의 몸매를 확 드러낸다든지, 김선아가 방귀를 뀌는 장면, 두 사람의 탱고 장면처럼 한 회에 하나씩은 눈길을 끄는 포인트를 노련하게 배치해 놓은 대본의 맛을 살리는 건 차승원과 김선아의 세심한 코믹 연기다.

하지만 보는 이들이 이 드라마를 작가의 의도대로 정치 상황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로 볼지, 아니면 두 사람의 유쾌한 코미디로만 즐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화면에 꾸준히 등장하는 정치용어와 정치에 대한 경구들이 ‘정치’를 주제로 한 드라마임을 상기시키긴 하지만 그에 비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풍자의 맛은 약한 느낌이다.

‘그저 바라보다가’는 톱스타(김아중)와 평범한 우체국 직원(황정민)이 팬과 스타의 관계에서 우연히 계약연애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서 시작했다. 영화 ‘노팅힐’이나 얼마 전 끝난 ‘스타의 연인’이 곧 연상되듯 익숙한 이야기다. 드라마의 세부적인 설정에서도 김아중의 비밀을 쫓는 신문기자의 캐릭터라든지, 스타가 숨겨 둔 아픈 엄마와 애인처럼 어디서 본 듯한 것이 많다.

하지만 드라마의 모든 약점을 뛰어넘는 것이 황정민의 표정 연기다. “한지수(김아중)씨는 나중에 저 같은 사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랑 한지수씨랑 둘만 알고 있는 이 비밀 때문에 평생 한지수씨를 기억하게 될 겁니다” 같은 대사를 할 때 느껴지는 그의 절절한 진심은 수줍은 듯 설레는 듯한 표정을 통해 진하게 전해진다. 좋아하던 스타에게서 “사귀는 척하자”는 제안을 받고 설레면서도 여자의 차가운 진심을 읽을 때마다 무너지는 순정 같은 복잡한 심경을 황정민은 어수룩한 얼굴 속에 정확히 담아 낸다.

그에 비하면 황정민의 판타지 대상인 김아중의 캐릭터는 톱스타라는 드라마 설정에 걸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저 예쁜 스타가 아니라 뼛속 깊이 스타의 본성을 가진 여배우로, 혹은 황정민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큰 장벽 너머의 사람으로 묘사되어야 두 사람의 로맨스가 좀 더 리얼하게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