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사람들]수석비서관들 발탁이유…'준비된 인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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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정부 첫 수석비서관들이 발탁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거명단계부터 따지면 최소한 10대1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낙점됐다는 점에서 이들의 '매력 포인트' 가 화제다.

이는 곧 金당선자의 '사람보는 기준' 도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문희상 정무수석내정자는 하루 3갑의 줄담배를 피우며 온갖 세상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스타일. 큰 그림을 그리는데 특히 강하다.

93, 94년 민주당 대표비서실장 시절 경복고 동문인 이원종 (李源宗) 당시 정무수석을 비롯, 서청원 (徐淸源) 의원 등 당시 여권의 실세들과 속깊은 대화를 통해 정국을 화해 분위기로 여러차례 이끌어냈다.

고교동문인 이한동 (李漢東) 한나라당 대표와도 친하다.

임동원 외교안보수석내정자는 담당 분야에 대한 종합적 능력을 갖춘 케이스. 통일 (통일원차관).외교 (호주대사).안보 (합참전략기획처장) 부문을 두루 거쳤다.

좀체 입을 열지 않는 과묵함, 4년간 아태재단 살림을 도맡으며 잡음이 한반도 없었던 깔끔함을 갖추고 있다.

金당선자를 항상 '총재님' 으로 깍듯이 모신다.

김태동 경제수석내정자는 정연한 논리가 돋보인다.

金당선자는 경제분야를 자문하는 여러 교수중 金수석의 설명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서울대상대를 수석졸업하고 한국은행에 들어갔다가 학계로 진출한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로 '현실에 대해 할말이 많고, 실제 하는' 성격이다.

기고활동도 활발했다.

이론가적 면모가 강한 金당선자는 金수석의 이런 적극성을 높이 사 비판적 여론을 뿌리쳤다는 얘기다.

강봉균 정책기획수석내정자는 총리행조실장 시절 이수성 (李壽成) 전총리로부터 "대한민국에 강봉균 같은 공무원이 있는 줄 몰랐다" 고 극찬을 받았다.

일을 강력히 추진하되 적을 만들지 않는 노하우가 있다.

金당선자의 수석비서관들은 이처럼 대개가 맹렬하고 철저한 성격들이다.

조규향 사회복지수석에 대한 관가의 평가도 마찬가지. 金당선자의 비서실장을 가장 오래 지낸 (3년8개월) 정동채 (鄭東采) 의원은 "총재 밑에서 게으른 사람은 저절로 낙오한다" 고 했다.

아울러 "설명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사람,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데 느린 사람도 마찬가지" 라고 지적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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