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경쟁력이다] 보령 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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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19일부터 25일까지 열렸던 보령머드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온몸에 머드를 바르며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제공=보령시청]

질퍽한 머드(mud.진흙)가루를 온몸에 바르는 순간 피서객들은 '토인(土人)'이 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진흙을 뒤집어 쓴 피서객들이 하얀 이를 드러낸 채 즐거워한다. 지름 10m(높이 80cm)의 원형 튜브 안에서 온몸에 머드를 바른 피서객들이 가마 타기.배구 등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는 16일부터 22일까지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서는 이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서해안 최대(해변 길이 3.8km)의 해수욕장인 이곳에서는 1998년부터 해마다 7월 중순 진흙잔치(머드 축제)가 열린다. 이때가 되면 대천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보령은 머드로 온통 떠들썩하다.

◇바다의 진흙이 진주로=보령은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고장이었다. 그저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래가 아닌 조개껍데기 가루로 백사장이 형성된 대천해수욕장만 피서지로 이름이 나있을 뿐이었다. 조용하던 보령이 뜨기 시작한 것은 94년. 그해 3월 부임한 박상돈(55.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대천시장이 우연히 본 한편의 영화가 '진흙 대박'을 터뜨리는 계기가 됐다. 보령시는 95년 1월 보령군과 대천시로 나눠져 있다 통합됐다.

그는 부임 이후 막연히 보령 지역 136km의 해안에 매장된 갯벌을 잘 활용하면 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94년 5월 그의 관사에서 미국 영화 '플레이어(Player.92년작)'를 보던 중 여주인공이 호텔의 머드탕에서 온몸에 머드를 바르고 목욕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는 순간 "바로 저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해수욕장 개발 담당 직원인 명희철(50.현 공보담당 계장)씨를 시장실로 불러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건네주며 "머드로 이벤트를 여는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했다. 명씨는 한국화학연구소에 머드 연구를 의뢰했다. 연구소 분석 결과, 보령 머드의 100g당 알루미늄 함량은 8.89%로 당시 K화장품회사가 수입하던 외국산 머드(8.60%)보다 많았다. 알루미늄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씨는 그해 7월 1일 대천해수욕장 개장과 동시에 해변에 머드 목욕시설을 설치했다. 천막을 치고 안에 욕조 5개를 비치했다. 갯벌에서 머드를 퍼다 욕조 안에 넣고 피서객들이 머드를 몸에 바르도록 했다. 요금은 머드 욕조를 20분 이용하는 조건으로 성인 기준 5만원씩 받았다. 그러나 하루 이용객이 10명에 불과했다. 요금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용료를 1만원으로 대폭 내렸다.

그해 해수욕장 운영기간이었던 8월 20일까지 50일 동안 머드 목욕시설을 이용한 피서객은 600여명. 수입은 600여만원에 불과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시는 피서철이 끝나자마자 이번엔 머드 화장품 개발에 나섰다. 94년 9월 ㈜태평양화학과 제품 생산 계약을 했다. 제품 개발과 생산은 태평양이, 판매는 보령시가 하기로 했다.

태평양화학은 2년간의 연구 끝에 96년 6월 머드화장품을 선보였다. 머드팩.보디클렌저.비누.샴푸 등 네가지 제품이었다. 당시 몇몇 화장품 회사가 외국산 머드를 수입, 머드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국산 머드로 화장품을 만들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홍보나 마케팅 전략이 없어 머드 화장품은 소비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머드축제로 도약=시는 97년 배재대 관광경영학부 정강환(40)교수에게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정 교수는 바닷가에 널려있는 머드를 활용, 머드축제를 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98년 7월 처음 열린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끌었다.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꾸민 게 주효했다. 관광객들이 머드를 바르고 선탠을 하거나 머드가 깔린 해변에서 씨름을 하는 내용이었다. 머드를 시커멓게 바른 피서객의 이색적인 모습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렸다.

머드축제 참가자는 ▶98년 31만2000명에서 해마다 늘어나 지난해에는 131만6000명으로 급증했다. 5년 만에 네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약간 늘어난 140여만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축제로 인한 지역 경제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지난해 축제기간(7월 19~25일) 보령시내 ▶숙박업소 300여곳이 81억7300만원▶음식점 400여곳이 65억47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또 ▶유흥업소 50여곳이 74억1500만원▶30여곳의 소매업소(할인점.수퍼 등)가 21억2800만원어치를 팔았다.

머드 화장품 매출액도 덩달아 늘었다. 축제 첫해인 98년 7억8700만원이었으나 2002년에는 15억1200만원으로 뛰었다. 2000년부터는 해마다 일본.대만 등에 3억원어치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25억원.

시는 올해 안에 대천해수욕장 인근 갯벌에 갯벌생태체험장(200만평)을 만든다. 이곳에서는 갯벌 흙을 몸에 바르고 조개 등 각종 해산물도 채취할 수 있다.

또 대천해수욕장 안에는 내년 6월 말까지 600평 규모의 머드체험랜드도 설치한다. 이곳는 머드탕.머드 마사지실.해수탕 등이 들어선다. 시는 머드체험랜드 운영으로 연간 4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보령=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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