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라크에 강경태세…걸프위기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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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라크가 조건부 무기사찰을 허용한 가운데 미국은 전면 사찰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걸프만의 전운 (戰雲) 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라크는 5일 대통령궁 시설 8곳에 대해 한달 기한으로 국제무기사찰단의 포괄적 접근을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미국은 이같은 이라크의 조건부 후퇴를 일단 긍적적으로 평가했다.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미흡하지만 조건부 허용은 이라크가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 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그러나 현 사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선 이라크가 의혹 장소에 대한 무조건적 접근을 수용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이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이날 외교적 해결을 선호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이라크의 대량무기 생산과 미사일 개발을 기필코 저지한다는 것이 미국의 전제조건” 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5일 미국이 전면사찰 수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오는 17일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감행할 것이라며 클린턴 대통령의 최종 결재만 남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유엔특별위원회 (UNSCOM) 도 이라크의 제안에 대해 “전면적 접근을 보장하라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 고 거부함으로써 미국의 무력사용을 측면 지원했다.

종전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나 미국 주도의 무력 사용론을 희석하려는 이라크의 의도를 차단하고 계속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다.

미국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유럽.중동지역 순방을 통해 이해 당사국들로부터 묵시적인 동의를 얻었다고 자신하고 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4일 순방을 마친 뒤 “모두가 외교적 해결을 선호하지만 어느 아랍국들도 미국의 무력 사용에 반대하지 않았다” 고 강조했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온 영국 이외에도 프랑스 등과 이견이 좁혀지고 있으며 쿠웨이트 등도 무력의 불가피성에 동조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아랍연맹은 “어떤 아랍국가도 미국의 군사공격을 허용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며 제동을 걸었고 프랑스.러시아도 줄곧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며 미국의 운신 폭을 제한하고 있다.

7일 개막되는 나가노 (長野) 겨울올림픽을 감안해야 하는 미국은 무력동원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협상을 통해 이라크를 굴복시키는 강온 양면작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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