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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정치에는 약한 서울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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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상암동에 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을 짓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공식발표후 보름도 안돼 대통령당선자의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부터 경기장 건설을 둘러싼 논란과정을 지켜본 기자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결과는 '이미 예견됐던 일' 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기장을 새로 짓겠다는 결정에는 서울시를 비롯한 정부의 무소신 행정과 지난해 가을 월드컵 예선전 연승 분위기에 편승한 감정적 열기, 여기에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가세해 낳은 불합리한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당초 잠실 종합경기장과 뚝섬 돔구장 만으로 월드컵 경기를 치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같은 내부방침은 대권출마를 선언한 조순 (趙淳)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인 고려' 에 의해 어느날 뒤바뀌었다.

물론 여기에는 축구계의 여론몰이와 집요한 로비도 숨어있었다.

실제로 주경기장 부지로 상암동을 선정한 뒤 몇달동안 2천억원이라는 막대한 공사비용을 시와 정부, 축구협회 등이 얼마씩 분담할 것인지를 놓고 한참이나 공방을 벌여 부지결정이 준비없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루 아침에 건립 결정이 뒤집어지는 사태발생에는 여론과 정치권에 대한 눈치보기에 급급해 소신있는 정책을 펴나가지 못한 서울시의 책임이 크다.

시 관계자들은 현재 남아도는 서울시내 체육시설과 2천억원 이상이 드는 시설주변 정비를 위한 예산문제 등을 들어 경기장 건립을 내심 적극적으로 반대해왔다.

하지만 축구계의 거센 반발이 두려웠고 새경기장 건립여부에 대한 새정권의 의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한마디 못했던 것이다.

월드컵경기장 건축계획을 재검토하라는 대통령 당선자 발언이 전해진 4일 밤만 해도 "우리가 무슨 힘이 있느냐. 정부 결정대로 추진하겠다" 고 방관하던 서울시가 5일 경기장 변경을 포함한 예산절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에서 그동안 서울시와 무관하게 이 문제가 추진돼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재원분담 문제만 해도 축구계가 부담하든, 중앙정부가 내든 결국은 국민의 혈세인데도 상대방 호주머니에서만 내도록 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기장 건립여부를 재검토키로 한 마당에 앞으로 정부결정이 번복되는 사태가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위신과 경제위기, 기존 시설의 활용문제 등에 대한 다각적이고 합리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문경란〈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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