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신방 겸영 불허’가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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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는 규제완화가 큰 몫을 했다. 시장이 개방돼 미디어 산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최근 미디어 규제를 풀어 시장접근 기회를 넓히려는 한국의 정책 변화에 경의를 표한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右)과 배리 웨스트 클리어와이어 사장이 5일(현지시간) 와이브로를 이용해 시속 60㎞로 달리는 차 안에서 무선영상회의를 시연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세계 최대 미디어그룹으로 꼽히는 미국 타임 워너사의 캐럴 멜턴 부회장은 4일(현지시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어떻게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면서 매체 간 겸영 확대나 미디어 기업의 해외진출은 분명한 시대적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최 위원장은 8일까지 워싱턴·뉴욕·LA 등지를 돌며 미디어 정책기관과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방문할 예정이다. 선진 미디어 정책을 배우고 미디어 기업의 경영전략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간 국내의 신문·방송 겸영 논란 과정에서 외국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됐던 나라가 미국이다. 겸영 규제를 완화하려는 정책이 최근 미국 의회에 의해 좌절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는 국내의 미디어법 개정 논란에 영향을 미쳤다. 법 개정에 찬성, 반대하는 측이 미국의 미디어 정책을 제각각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논란이 커졌다. 최 위원장의 이번 미국행은 이런 점에서 미국 미디어 산업과 정책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중 신문·방송 겸영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4일과 5일에 걸쳐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등을 취재한 결과 미국에서 겸영이 원칙적으로 허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만 미국은 전국을 210개 권역으로 나눠 같은 지역에서 신문과 방송을 모두 소유하는 것만 제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동일 시장이 아니면 지분제한 없이 겸영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도 수정 중이다. 2007년 말 FCC는 20개 대도시에 동시 겸영을 허용했다. 그러자 지난해 미국 의회가 “과도한 규제 완화”라며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최근엔 강경했던 의회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한다. 멜턴 부회장은 “신문의 경영위기가 가속화되면서 규제 완화에 반대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찬성 쪽으로 돌아서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다양성 추구를 위해 대기업이나 복합 미디어그룹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미국에선 글로벌 복합 그룹이 지상파를 소유하고 있다. 호주의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설립한 거대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퍼레이션은 2007년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했다. 뉴스코퍼레이션은 미국 4대 민방 중 한 곳인 폭스(Fox)의 소유주다.

또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90개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가네트 재단은 미국 내에서 23개 지상파 방송을 경영 중이다. 또 미국 지상파 시장은 민영체제 위주로 운영된다. NBC·CBS·ABC·Fox 등 4대 지상파 네트워크 방송이 모두 민영이다. 공영은 한국의 EBS와 비슷한 성격의 PBS가 사실상 유일하다. 미국에선 한국처럼 지상파 방송 시장에서 신규 진입자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

FCC는 2009~2014년의 ‘전략계획’을 발표하면서 미디어 분야의 목표를 ‘경쟁과 다양성을 고려한 규제’로 정했다. 규제를 풀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을 큰 원칙으로 삼되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최시중 “와이브로 전도사 될 것”=최 위원장은 5일(현지시간) 기자간담회에서 “제 자신이 기꺼이 전 세계에 우리의 와이브로(무선 인터넷) 기술을 전하는 ‘와이브로 전도사’가 되겠다”며 “국내 와이브로 시장도 의지를 갖고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머지않아 세계는 우리가 만든 휴대전화에 이어 우리가 만든 와이브로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세상과 접속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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