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은 20년 전 일 … 병은 이미 나를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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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호세 카레라스는 12일 내한공연에서 스페인 전통음악인 사르수엘라, 남미 탱고 등을 들려준다. 그는 “오페라 무대는 4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적당한 작품과 지휘자·연출가를 만난다면 앞으로도 정통 오페라 무대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고양문화재단 제공]

 6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 호텔에서 열린 세계적 테너 호세 카레라스(65) 기자간담회. 지난해에 이어 내한한 그에게 쏟아진 질문은 대부분 백혈병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이 무서운 병을 이겨내고 무대로 돌아온 성악가로 알려져 있다. ‘생존 확률 10%’라는 진단을 받고 난 뒤 투병 과정에서 쉼터가 됐던 음악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하지만 카레라스의 투병은 20여년 전 일이다. 병은 1987년 발견됐고, 그는 이듬해 복귀 공연을 열었다. 카레라스는 이날 “병은 이미 나를 떠났다. 그 어떤 치료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현재 백혈병과의 유일한 끈”이라고 말한 것은 88년 세운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국제 재단’이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 백혈병에 관한 논문을 선정해 매년 후원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의 이동 수단과 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모범생’ 테너=기자간담회가 끝난 후 만난 카레라스는 성실한 음악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투병에 관해 똑같은 질문을 20년째 받고 있지만 그 또한 나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해 항상 다르게, 진심으로 답한다”고 말했다. “현재 내게 가장 중요한 재단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 기쁘다”는 것이다.

카레라스는 “공연이 없을 때면 매일 재단 사무실에 출근해 사무직원처럼 일한다”며 웃음지었다. 이렇게 20년 동안 꾸준히 일군 재단은 스페인에서 시작해 미국·스위스·독일에 지사를 두게 됐다. 논문과 수혜자 선정에도 꼼꼼하게 관여한다. “병과 싸우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무대에서 성실하기로 유명한 음악가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함께 노래하는 소프라노 박미혜(49)씨는 “2004년 처음 같이 무대에 섰던 카레라스가 최선을 다해 리허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카레라스는 “요즘엔 1년에 50여회 공연하는데 음악의 품질을 위해 적당한 횟수”라고 설명했다. 백혈병 재단 일, 가족과 보내는 시간 등을 내기 위해 공연 횟수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하는 오페라 대신 탱고·칸초네 등 조촐한 ‘전공’을 특화한 것도 무리하지 않기 위한 전략이다.

◆“가족이 내 행복의 원천”=시종일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던 카레라스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자 긴장을 풀었다. “손자 세 명과 함께 지내기 위해 공연을 자제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장에 가서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가끔은 먼 친척까지 불러모아 목에 팀 수건을 걸고 축구장에 가는 열성 팬이기도 하다. 하지만 착실한 음악인은 스포츠 응원도 남달랐다.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하진 않는다. 목청에 무리가 와 노래에 지장을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젊은 시절과는 또다른 응원 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호정 기자

◆호세 카레라스=스페인 바르셀로나 태생. 6세에 노래를 시작해 11세에 리세우 오페라 극장에서 보이 소프라노로 데뷔했다. 정식 데뷔작은 24세에 출연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이후 베르디·푸치니 등 미성(美聲)이 필요한 작곡가 작품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68)와 함께 1990년대 ‘스리 테너(Three tenors)’ 시대를 열었다. 고음(高音)을 자랑하는 파바로티, 힘이 특징인 도밍고 사이에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사랑을 받았다.

▶호세 카레라스 내한공연=12일 오후 8시 일산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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