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도 과하면 독이 된다. 특히 경제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푼 과잉 유동성이 종국에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게 단적이 예다. 증시에서는 원화 값 상승이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를 촉발하는 좋은 약으로 거론됐다. 즉 원화가치가 오르면 환차익을 기대한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들인다. 이 덕에 원화 가치는 더 올라가고, 이는 또 다시 외국인의 순매수를 유발한다.
지난달 내내 1달러에 대해 1300원 중반 대에 머물던 원화 값은 최근 3일 만에 6.2%(84.3원)나 치솟으며 1200원대로 진입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투자자가 1조1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하면서 코스피지수는 7.5%(97.68포인트) 급등했다.
지금까지는 원화 강세가 이처럼 좋은 약이 됐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원화 강세가 과속으로 질주하면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 자금을 끌어 모으던 ‘환율효과’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 이재훈 애널리스트는 “원화 값이 추가로 오를 여지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외국인 순매수 속도가 전보다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인은 두 달 동안 거래소시장에서 5조800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동안 환율 덕을 톡톡히 봤던 수출 관련 업종에도 가파른 원화강세는 반갑지만은 않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국내업체가 1분기에 해외 경쟁사에 비해 좋은 실적을 거둔 데는 올 들어 환율이 평균 1395원대에 머물러 있었던 점을 빠뜨릴 수 없다. 최근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 관련 주가 강세를 이어간 것도 원화 약세에 대한 기대감이 미리 반영된 것이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위원은 “원화 값이 지난해 금융위기 시작 때와 비슷한 1200원 초반까지 가파르게 오른다면 심리적인 부담이 커지면서 증시 분위기가 돌아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1200원대의 환율은 기업의 수출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투자심리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국내 기관투자가는 원화 값이 1200원대로 오른 지난달 30일과 지난 4일 IT(삼성전자·LG디스플레이·하이닉스·LG전자)와 자동차(현대차·현대모비스) 등 수출 관련 종목을 중심으로 매도에 나섰다. 동시에 원화 강세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항공·여행·철강주를 순매수했다. 우리투자증권 박성훈 연구위원은 “당분간 업종별 주가 등락을 좌우할 키워드는 환율”이라며 금융주와 항공·여행 관련주를 유망 업종으로 내다봤다.
원화 값이 다시 조정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HMC투자증권 류승선 수석연구위원은 “달러 약세 속도나 엔화나 위안화의 강세에 비해 원화 값이 너무 빠르게 올랐다”며 “단기적으론 추가 상승할 수 있지만 이후 조정을 거쳐 2분기에 1300원 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내다봤다.
한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