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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나라 근본 흔드는 '의문사위'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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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며칠 전 남파간첩 및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를 '양심의 죽음'이라며 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인정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번에는 장기수 출신 전향자 가운데 북송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자는 권고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소속의 이 위원회가 도대체 누구를 대변하는 기구인지 그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세금을 쓰면서 이 나라 정체성 근본을 계속 훼손하고 있는데도 이 정권에서는 누구 하나 말이 없다.

의문사위는 지난 권위주의 통치에서 민주화운동과 관련,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2000년 10월 출범했다. 말 그대로 권력에 의해 의문스런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기구다. 이런 기구가 간첩을 민주인사로 만들더니 이제는 살아 있는 장기수 출신들의 북송 문제까지 개입하니 월권행위를 넘어 아예 나라의 근본을 흔들자고 작정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장기수 출신들은 남북 분단의 희생물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본인이 희망한다면 북으로 보내주는 것이 인도적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 상호주의 원칙에 기초해야 한다. 북에는 아직도 휴전 이후 납북된 486명과 국군포로 500여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의 송환 문제는 팽개쳐 놓은 채 장기수 출신들만 감싸니 이게 누구의 정부인가.

다행히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의문사위와는 달리 어제 간첩 2명에 대해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부인하고 국가 안전을 위협한 사람들이 수감 중 반민주 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고 해서 그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은 잘한 일이다.

의문사위는 더 이상 이 나라의 정체성을 흔들지 말라. 이런 식의 혼란을 조장한다면 이 기구의 존폐를 정식 거론할 필요가 있다. 퇴역 장성들이 의문사위를 찾아 항의하는 등 사회 갈등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진상조사에 나섰다니 더 이상의 혼선이 없도록 정리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