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은 제네바 협약도 보호 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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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전 '반핵 반김 국민협의회' 소속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의문사위 해체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채명신씨(左) 등 퇴역장성 모임인 성우회 회원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右)의 안내를 받고 있다. [김성룡 기자]

▶ 대한상이군경회 회원들이 6일 민주노동당을 방문해 '의문사위 결정'과 관련, 소화기를 뿜는 등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

"죽을 때까지 공산주의 일당 독재체제를 신봉했던 남파간첩과 빨치산이 어떻게 민주인사가 될 수 있나."

"생각이 다르더라도 인간의 존엄성은 보호돼야 하고, 이들이 강제 사상 전향 제도를 없애는 데 기여한 점이 있다."

퇴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회장 오자복)' 회장단 7명은 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방문, 한상범 위원장 등과 설전을 벌였다. 최근 의문사위가 사상 전향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숨진 남파간첩.빨치산 출신 재소자 등 세명을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날 면담은 한 위원장과 오 성우회장이 중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인연을 화제로 삼아 덕담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잠시 뒤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냉각돼 예정시간보다 40분을 넘긴 1시간10여분 동안 이어졌다.

성우회 측은 먼저 두 장 분량의 공개 질의서를 낭독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한 행위가 민주화 운동이냐" "잘못된 결정을 철회할 계획은 없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의문사위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이 간첩이건 빨치산이건 위헌적 사상 전향 공작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한 것은 양심의 가치실현에 기여한 것"이라고 맞섰다. 한 위원장은 "의문사위 위원들은 모두 재판관과 같은 독립 심판기관"이라며 결정을 바꿀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의문사위 측은 "1기 의문사위가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고 결정한 것을 2기 위원회가 왜 번복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세상에 고정불변의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진 질의 응답에서 김인기 전 공군참모총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던 사람들을 민주화 인사로 인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 이기욱 위원은 "폭력적 방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하는 동안에는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들은 이미 우리 법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며 "자유.민주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이어 "포로의 지위를 규정한 제네바 협정에서도 간첩은 보호하지 않는다"며 "그들의 죽음이 민주화를 이끌어온 것이 아니라 민주화가 진척되던 중에 그들이 죽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상훈 재향군인회장은 "빨치산과 남파간첩 등 우리 헌법을 부정한 사람들이 민주화 인사라면 김일성.김정일은 민주화의 대부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채명신 6.25 참전연합회장도 의문사위 관계자들에게 "여러분이 신봉하는 민주주의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그것인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지 않는다"며 "빨갱이를 편든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유감"이라고 대응했다.

이수기 기자<retali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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