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 858기 폭파 재조사 공방] 느닷없는 '재개봉'…소모전 재연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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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7년 12월 국내로 압송될 당시의 김현희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사라진 KAL 858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지난 4일 재조사 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폭파 사건이 발생한 지 16년여 만이다.

KAL기 폭파 사건은 대법원에서 이미 '북한 김정일의 지령에 의한 사건'으로 확정판결이 났다. 그럼에도 87년 대선 직전 엄청난 북풍(北風)을 몰아쳤던 정치적 맥락 때문에 오랜 세월 음모론적 해석의 대상이 돼 왔다. 유족들은 지금까지 이 사건은 조작된 것이라고 규탄하며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수사를 맡은 안기부(현 국정원)는 이런 주장들을 일축한다.

이제 사법적 판단을 뛰어넘어 정부의 재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를 계기로 KAL기 폭파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문점과 수사 당국의 반론을 집중 조명해 본다. [편집자]

◇"김현희는 가공의 인물이다"=유족들은 김현희씨가 조사과정에서 자신이라고 밝힌 72년 11월 4일 사진 속 아이의 둥근 귀 모양이 김씨의 역삼각형 귀와 다르다는 점을 들어 김씨는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당시 불안정한 심리 때문에 김씨의 진술에 착오가 있었으며 72년 11월 2일자 다른 사진에서 김씨의 어린 시절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88년 미 정보기관을 통해 알아본 결과 62년 쿠바 주재 외교관 명단에서 김씨의 아버지 김원석이 부인 임명식과 함께 근무한 것으로 확인돼 "어린 시절 쿠바에 살았다"는 김씨의 진술을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이은혜(일본명 다구치 야예코, 일명 지도세)'라는 일본인에게서 일본화 교육을 받았다"는 진술 역시 일본 경찰이 '지도세'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인이 78년 납북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현희의 '조선노동당원증'소지 여부=김씨는 수사 과정에서 평양외대 1학년에 재학 중인 78년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된 뒤 초대소에서 특수교육을 받던 중 82년 4월 노동당에 입당했다고 진술했다. 법원이 지난 2월 공개한 판결문에는 '(김씨가)소지하고 있는 조선노동당원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동안 수사기관에서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노동당원증이 공개되면 국적과 실명.나이 등 신분 관련 사항이 확인된다며 당원증의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국정원 측은 진술 과정에서 김씨가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기로 그려보라고 했던 것이어서 증거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명한다.

◇"김현희는 음독자살을 기도하지 않았다"=유족 측은 음독 직후 진찰했던 바레인 살마니야 병원 관계자의 진술을 근거로 김씨의 위 세척 결과 독극물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국정원은 88년 1월 6일 바레인 정부의 'KAL 858기 수사 보고서'에서 김씨가 독약 앰플로 자살을 기도해 인공호흡을 실시하고 물로 입을 헹궜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김씨에게서 채취한 혈액.소변.입안 세척물에 대한 청산가리 검사에서 모두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현희는 KAL 858기 탑승시 폭발물이 든 쇼핑백을 소지하지 않았다"=기내에서 목격된 김씨의 소지품에는 쇼핑백이 없었다는 대한항공 박길영 사무장(아부다비에서 다른 승무원과 교체됨)의 진술을 근거로 유족 측은 폭발 자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다.

반면 바그다드 공항에서 김현희의 휴대 물품을 직접 검색한 두 보안 요원은 이라크 당국 조사에서 "김현희가 반달형 검은 핸드백과 함께 소형 라디오와 배터리 4개 등이 들어 있는 비닐백을 들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폭파 후 김현희는 왜 바레인에서 바로 탈출하지 않고 3일이나 머무르다 잡혔나"=김씨가 도착한 11월 29일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항공사가 휴무일 것이라고 판단해 30일 항공사를 찾았으나 탑승권이 매진됐다. 12월 1일자 탑승권밖에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 국정원의 설명이다.

◇"유품과 유해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유가족들은 세계 여객기 사고 사상 탑승객의 유품과 유해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사건은 한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 연방항공관리국의 폭파 실험 결과 기내 좌석이 폭발과 함께 접혀져 승객들이 좌석에 갇히게 돼 시신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사고 추정지역이 인도양에서부터 미얀마.태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곳이라 찾기 어려웠다고 국정원은 지적한다.

◇"수색 10일 만에 조사단이 철수하고, 블랙박스 회수 작업도 미진했다"=국정원 측은 사고 발생 직후 정부조사단 25명이 현지에 도착했으며 12월 9일 블랙박스 수색용 고성능 음파탐지기가 장착된 미군 항공기 5대를 이용, 추락 예상 지점을 수색했다고 해명한다.

사건 발생 10일 후 홍순영 조사단장 등은 귀국했으나 수색전담팀 9명은 현지에 남아 수색을 계속했다. 블랙박스는 30일이 지나면 신호가 끊기도록 돼 있어 12월 29일 수색을 중단했다고 한다.

◇"김현희를 대통령 선거 전날인 87년 12월 15일 국내로 압송하는 등 정치공작의 성격이 짙다"=당시 바레인과 한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범인 신병 확보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국정원 측의 입장이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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