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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 말씀 영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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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 불교를 전공한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는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불교 용어를 영어로 자주 풀어준다. 예컨대 화두는 'topic of meditation'으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Form is emptiness, emptiness is form'으로 설명한다. 한국 문화의 근간인 불교를 영어로 설명하는 게 다소 어색한 구석도 있지만 한글 세대인 요즘 학생들은 한자보다 영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인다.

이는 국내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해선 한국 불교를 영어로 소개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요즘 세계 불교의 대명사 비슷하게 통용되는 달라이라마나 틱낫한 스님도 영어를 잘하며, 그들의 저서 또한 영어로 널리 번역됐다.

한국 현대 불교의 대표적 선승으로 꼽히는 성철(1912~93) 스님의 법어집 '이 뭐꼬'를 영어로 옮긴 'Opening the Eye'(김영사 발간)가 나왔다. 송광사 고(故) 구산 스님.화계사 숭산 스님의 법어집이 영어로 출간된 적이 있으나 한국 선불교의 요체를 외국에 전하는 영어 서적은 아직도 매우 드문 실정이다. 1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불교의 명성에 비해 이를 외국에 적극 알리는 작업은 걸음마에 불과한 것이다.

번역은 미국인 브라이언 배리가 맡았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온 그는 80년대 말 외국인을 위한 참선도량인 연등국제선원에서 성철 스님의 법어를 만났으며, 90년대 초엔 스님의 또 다른 법어집인 '자기를 바로 봅시다'를 영역한 'Echoes from Mt. Kaya'를 내기도 했다.

출판사 측은 이 번역본을 해외에 적극 소개할 방침이다. 일단 오는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홍보 장소로 삼을 계획이다. 현재 외국 출판사 서너 곳과 저작권 계약도 추진하고 있다. 성철 스님을 시봉했던 원택 스님은 "영어 법어집이 21세기의 대안 사상으로 떠오른 선불교를 외국에 알리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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