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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글짓기로 중국·대만 학생 ‘마음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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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글백일장에 입상해 성균관대 대학원에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다니 무척 기뻐요. 하지만 저는 이미 한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됐어요. 그러니 이 상은 다른 중국 친구에게 넘기겠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대륙 땅을 밟았다는 린신이(林欣儀·23·여·대만국립정치대 4년)가 수줍은 듯 말하자 중국 대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대만과 중국 대학생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30일 베이징 시내 원진(文津) 호텔에서 열린 제3회 한글백일장.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젊은이 80여 명을 하나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이들이 ‘한글’을 배운다는 사실이었다.

린신이의 양보로 뜻밖에 행운을 잡은 한쉬(韓蓄·22·여·베이징외국어대 3년)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중국 최북단 헤이룽장(黑龍江)성의 헤이허(黑河)시에서 베이징으로 어렵사리 유학 온 한쉬에게 한국 유학은 그야말로 꿈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중앙일보와 ‘성균관대 21세기한국어위원회’(위원장 이명학 사범대학장)가 공동 주최하는 한글백일장은 올해로 3년째를 맞았다. 2007년 첫 행사 때 한국어위원회는 중국의 몇 개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한글을 가르치는 중국 내 거의 모든 대학과 네트워킹을 형성한 상태다. 올해 각 대학은 치열한 선발시험을 치렀다. 베이징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학별로 한 명만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 저우위보(周玉波·34) 교수는 “한글백일장에서 입상하면 한국에 유학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한글을 공부한다”고 자랑했다.

이날 중국 전역 46개 대학에서 온 80여 명의 참석자는 ‘어느 하루’라는 백일장 시제를 놓고 두 시간 동안 에세이를 썼다. 은상을 받은 선치(沈琪·22·남·베이징 제2외국어대 3년)는 시제를 보자마자 머뭇거림 없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리히터 규모 8의 강진으로 자신의 고향인 쓰촨성에서 8만600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던 지난해 5월 12일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서울에서 언어 연수를 받던 중이었다. 날벼락 같은 지진 소식에 집에 있는 홀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결국 무사했지만 선치는 그 끔찍했던 경험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고 적었다. 금상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낡은 자전거를 소중히 간직하면서 그 자전거로 딸을 학교까지 태워 주는 아버지 이야기를 적은 가오난(高男·22·여·톈진사범대 3년)에게 돌아갔다.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푸시저(傅希哲·21·여·베이징대 3년)는 독특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 어학 연수를 다녀온 것이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인과 조선족이 어려움 없이 소통하듯이 남북 간의 언어 이질화는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평가위원장을 맡은 성균관대 김택현 사학과 교수는 “막연한 주제였지만 독창적인 답안이 적지 않았고, 중국 대학생들이 가족의 가치와 중요성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시상식에 참가한 김익겸 주중 대사관 한국문화원장은 “지난 3월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한글을 국가 브랜드 상품으로 지정했는데 한글백일장이 한글 세계화 작업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어 고맙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베이징=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중국‘대만 교수가 본’ 백일장

정샹란(鄭香蘭·31·여)
톈진사범대 한국어과 교수

“선생님·학생 모두 참여 열기가 뜨겁다. 백일장이 한글 글쓰기 공부의 좋은 자극제가 됐다. 베이징과 달리 톈진은 한국어 학습 환경이 좋지 않다. 한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여 주기 바란다.”

장제쭝(張介宗·54)
대만국립정치대 한국어문과 교수

“대만에서도 한국어과 지원자가 늘고 있다. 한글이 대만과 중국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게 돼 지도교수로서 뿌듯하다. 한국과 대만 도 한글을 통해 더 많은 교류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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