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탕 신고제로 바뀌어 서울시 거부근거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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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으니 사업계획 변경신청서를 빨리 처리해 달라.” “뻔한 퇴폐.윤락 행위로 서울을 찾는 외국관광객에게 나쁜 이미지를 줄 수 있으므로 절대 불가하다.”

증기탕을 설치하겠다는 관광호텔사업자와 이를 거부한 서울시 사이에 4개월가량 진행된 힘겨운 줄다리기가 업자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퇴폐조장 논란의 대상이 된 증기탕 시설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어려워져 서울시가 고심하고 있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부속 행정심판위원회는 최근 용산구이태원동 E호텔측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관광사업계획 변경승인 신청서 반려처분 취소심판청구' 에서 "서울시의 처분은 부당하다" 며 청구인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96년 8월 공중위생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증기탕을 포함한 목욕장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자 호텔 내부식당 1백62㎡를 개조해 증기탕을 설치키로 한 E호텔이 서울시에 사업계획 변경신청서를 낸 것은 지난해 8월 중순. 식품위생법상으로 보면 증기탕이 신고제로 바뀐 만큼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사업변경을 거부할 근거가 없어 서울시는 고심에 빠졌다.

궁리끝에 찾은 '묘수' 는 증기탕이 호텔건물에 입주하는 만큼 식품위생법이 아니라 관광사업법상의 관광호텔사업승인권을 적용해 사업신청을 거부하는 것. 이에 따라 거부처분을 내린 서울시는 이후 '버티기' 에 들어갔고 견디다 못한 E호텔측은 지난해 10월 행정심판위원회에 심판을 청구, 맞섰다.

이에 행정심판위는 “증기탕의 윤락행위를 우려한 서울시의 처분은 신고제의 취지에 어긋난다” 고 결정했다.

이런 결정이 나자 서울시는 비상이 걸렸다.

시 관계자는 “현재 시내 관광호텔 1백1곳 가운데 증기탕이 설치되지 않은 80여곳에서 증기탕을 짓겠다고 신청이 쇄도할 경우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완전히 사라졌다” 고 말했다.

특히 이태원은 외국인의 출입이 잦아 자칫 퇴폐관광을 조장한다는 비난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올8월부터 증기탕엔 이성 (異性) 입욕 (入浴) 보조원을 둘 수 없도록 했지만 현재도 공공연히 이뤄지는 증기탕의 윤락행위에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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