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 읽기] 두 얼굴의 사르트르, 그래도 큰절 올릴 만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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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사르트르 평전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변광배 옮김
을유문화사, 968쪽, 3만5000원

여자관계나 ‘남성’ 능력을 포함한 사생활을 이토록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다니! 그러나 이토록 열렬한 존경심과 함께 한 명의 살아있는 인간, 걸출한 문화영웅을 탄생시켜내는 프랑스 지식사회의 훈훈함이라니! 이 책은 읽는 내내 당혹스러움과 감탄이 번갈아 나온다. ‘열심히 했으나 요령부득인’ 번역이 껄끄러워도 상관없다. 책이 재미있는데 누가 몰입을 말릴까?

책은 20세기 불세출의 지식인이자, 모순덩어리 인간이기도 했던 철학자 사르트르(사진)를 그리지만, 실은 ‘괴물’ 저자의 독특한 시선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앙리 레비 자체가 현재 프랑스의 간판 지식인인데, 그는 30년 대선배 사르트르를 마구 짓밟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어이쿠 형님!”하며 기꺼이 오체투지를 한다. 그래서 더욱 멋지다.

여자 얘기부터 꺼내보자. 사르트르가 건드린 여자는 한 둘이 아니다. 계약 결혼한 여자 보부아르의 제자(올가)를 유혹하기도 했다. 올가의 여동생에도 손을 뻗쳤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인간 사르트르는 남자들과 철학을 논하기 보다는 여성과 수다 떠는 것을 즐겼다. 킬킬 대고 웃기도 잘했다. 하지만 “성관계에서 재능 있기보다는 시시한 애인에 불과했다”는 폭로를, 잠자리를 함께 했던 여인 비앙카의 증언으로 들려준다.(프랑스라지만 이래도 되나?)

그런가 하면 지식인 사르트르는 모순덩어리다. 소설『구토』에서 자유를 외쳤지만, 소련의 전체주의자 스탈린의 동반자였다. 이스라엘을 지지하던 그는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에 가해진 테러를 지지하는 ‘입장 바꾸기’도 손바닥 뒤집듯이 했다. “반미주의가 뭔지도 모른다”고 능청을 떨더니 2년 뒤 ‘미국이라는 바이러스’를 맹렬히 비판(628쪽)한다. 어떤 사르트르가 진짜이지? 저자는 혀를 찬다. 사르트르는 차라리 두 명으로 봐야 옳다는 게 그의 중간결론이다.

그럼 저자는 사르트르를 우습게 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의 깃발”이자 “세계의 탄생” 그리고 “영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일인 국가, 한 명의 국가 원수”라고 추앙한다. 극대치의 찬양이다. 문학사·철학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민중적이면서 세계적인 담론을 이끌었던 지식인은 전무후무하다는 게 근거다. 요즘 젊은이들이 미셸 푸코·자크 라캉 등을 찾지만 사르트르는 여전히 사르트르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못박는다.

책은 프랑스어 판 부제대로 ‘철학적 탐구’다. 그만큼 골치 아프다. 출생과 성장 과정 등 알려진 사실은 건너뛰는 불친절도 각오해야 한다. 20세기 철학사와 지식풍토에 익숙하지 않은 이는 1000쪽 가까운 스토리가 지루할 수도 있다. 워낙 많은 인물정보와 배경지식을 요구하지만 ‘그럼에도’ 탐내볼 가치는 충분하다. 10점 만점에 9.5점(껄끄러운 번역 때문에)! 평자(評者)가 만난 전기·평전 중 으뜸의 하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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