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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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흥망이 유수 (有數) 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도업 (都業) 이 목적 (牧笛)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선인교 내린 물이 자하동에 흘러드니

반천년 왕업이 물소리 뿐이로다

아이야 고국 (故國) 흥망을 물어 무엇하리오

위는 고려 충신 원천석이 읊은 것이고, 아래는 고려를 쓰러뜨리고 조선을 세운 혁명가 정도전이 읊은 것이다.

다같이 한 왕조가 망한 뒤의 황량한 송도를 노래하는데 하나는 그곳이 비탄의 대상이고 하나는 당연히 망각의 대상이었다.

이것이 뒷날의 '황성옛터' 로 이어져 나라잃은 시절의 엘레지가 되기도 하는데 한시대가 가고 또 한시대가 올 때의 인간의 서로 다른 얼굴이 여기 있다.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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