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비브 하우스’에 달항아리 걸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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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음악실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가 백남준과 강익중의 작품을 걸었습니다. 피아노 앞에 놓인 것은 백남준이 2000년 퍼포먼스 때 사용한 바이올린 작품이고, 반대쪽 벽면에 걸린 것은 강익중의 3인치 회화와 달항아리 그림입니다. 저쪽에 백남준이 1973년 만든 비디오 작품도 있습니다.”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우리 대사관저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양국 간 가교 역할을 하는 미술품을 걸 수 있어 기쁩니다.”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는 직접 나서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열의를 보였다. 강익중의 회화 ‘달항아리’에 대해 설명하는 스티븐스 대사. [박종근 기자]


29일 오후 서울 정동 주한미대사관저가 활짝 열렸다. 캐슬린 스티븐스(56) 주한 미대사가 관저 구석구석에 배치한 미술품을 소개했다. 서도호·바이런킴·니키리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15명과 중국계 작가 1명의 작품 36점을 새로 걸었다. 전시 제목은 ‘한국과 미국을 잇다’, 재임 내내 열리는 상설전이다. 각국 인사가 드나드는 미대사관저에 미국이 아니라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 해외에서 보편성을 획득한 한국 미술가 작품이 입식 한옥인 관저와 어우러졌다.

관저는 1971∼74년 재임한 필립 하비브 전 주한 미대사가 지어‘하비브 하우스’라고 불린다. 덕수궁 뒤라는 위치와 한·미관계 등을 고려해 미국식이 아닌 한식으로 지었다. 시원하게 서까래를 드러낸 기와 지붕을 올렸지만 일반 한옥보다 천장이 높다. 서양식 생활에 맞게 절충한 형태다. 중정(中庭)에는 경주 포석정을 본딴 연못도 있어 우리네 풍류를 살렸다.

#미국 작가 대신 한국 작가 고른 파격

이번 전시는 미 국무부에서 1964년부터 시작한 ‘아트 인 앰버시 프로그램’ 일환이다. 전 세계 180여곳 미국 대사관저에 미국 미술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무부는 미국내 미술관·갤러리 등으로부터 작품을 대여받아 일정 기간 각국 대사관저에 전시한다. 운송료·보험료 같은 실비는 정부가 부담한다. 미국 미술을 알리는 게 주목적이지만 이번 경우엔 한국 작가들 작품을 구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 국부무에서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들 도움을 얻어 작품을 고르고 대여받았다”고 설명했다. 대사는 “작가나 소재 등이 한국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적이기도 하다. 다양한 재능을 끌어들여 이를 키우고 지지하는 미국의 힘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대표성 떨어지는 한국 재외공관 컬렉션

우리나라 경우에도 외교통상부에서 2003년부터 ‘재외공관 문화전시장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각국 주재 대사관·영사관 및 그 관저에 미술품을 두고 우리 문화를 홍보하겠다는 취지다. 한도룡 홍익대 산업디자인과 명예교수와 화가 박항률·문봉선 씨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여보다는 구입을 하는데 현재 소장품은 3000여점이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부가 미술투자를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어 5년째 예산이 삭감되는 등 열악한 환경”이라며 구체적인 소장품 내역 공개를 꺼렸다.

외교부는 인터넷 (www.cyberartgallery.co.kr)상에 한국화가 김보희·장진원씨의 작품 등 각국 공관에 걸린 미술품 중 30여점을 엄선해 소개하고 있다.

이를 검토한 서울옥션 최윤석 미술품 경매팀장은 “농악·역사인물·수묵·한지 등 주제나 매체 면에서 한국성을 강조하는 작품 위주로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백남준·이우환·김창열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해 해외에 한국 미술의 우수성을 강조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권근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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