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과학기술의 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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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비빔밥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식탁에 흔히 올려졌던 여러 가지 반찬을 각자의 기호에 맞게 어떤 이는 맵게, 어떤 이는 담백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 즉 개개인의 선택이 가능한 음식이라는 점에 있다. 일견 단순하지만 무한한 다양성을 제공하는 음식인 것이다. 이렇듯 각자의 기호에 따라 선택된 재료를 넣고 비벼진 비빔밥은 나물들을 그냥 따로 먹을 때와는 전혀 딴판인 새로운 맛을 제공한다. 한입 가득 먹었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맛의 조화는 세계 어느 나라 음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맛이다. 더구나 어려운 시절, 무척이나 소박한 음식이었던 비빔밥이 21세기 들어서는 탁월한 건강식이 됐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미리 준비된 여러 가지 나물을 섞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손쉽게 쓱쓱 비벼 먹을 수 있다는 간편함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장점이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는 이미 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식문화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과학칼럼에서 비빔밥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 비빔밥 문화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특성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세계도 놀라고 있는 우리나라 휴대전화 산업의 장점과 경쟁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우리가 휴대전화를 이렇게까지 신속하게 진화시킬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휴대전화에 TV를 집어넣을 생각을 한 것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도 우리 한국인이다. 서구인들 중에는 아직도 십수년 전에 나온 군대 무전기만 한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몇 달이 멀다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휴대전화로 교체한다. 그만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넘친다. 요즘 젊은 예술인들이 문화 한류를 만들고 있듯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개척정신을 바탕으로 한민족 특유의 ‘비빔밥’적 자질을 발휘한다면 ‘과학기술 한류’를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융합기술이 세상을 급격하게 바꾸어 나갈 것이다. 휴대전화에 햅틱 기술을 장착하고, TV에 인터넷을 연결하면 예전에 없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저 튼튼하고 빠른 자동차는 이미 구매의 중요한 판단기준 순위에서 밀린 지 오래됐다. 그보다는 스스로 주차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음성인식을 통한 정보제공 기술 등이 구매자를 더 유혹한다. 융합기술은 기존의 정보통신, 나노, 생명과학과 같은 혁신 기술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이미 세계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다양한 기술들을 어느 한 군데 기업이 다 개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기술을 사오는 것이 전 세계 기업들의 연구개발에서 하나의 패턴이 되었다. 더 이상 기술장벽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 아니다. ‘기술융합’에 있어서 얼마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마인드로 다양한 기술들을 섞어 새로운 융합산업을 꽃피울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비빔밥 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에 많은 기대를 거는 이유다.

김문상 KIST 프런티어 지능로봇 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