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미군…주저앉는 땅값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 경기도 평택시에 들어선 외국인 대상 임대 주택들. 세입자가 많지 않아 빈 집이 남아돈다.

“미군이 떠날 판인데 누가 이곳 부동산에 관심을 가집니까.”지난 3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미 2사단 캠프캐이시 부근 D부동산 중개업소. 하동일 사장의 말이다. 경기도 동두천·의정부시, 서울 용산 등 미군기지 인근 지역 부동산 시장이 깊은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다. 미군 재배치 계획으로 미군이 한강 이남이나 이라크로 떠나 이들을 상대로 한 가게나 임대 주택사업 등이 타격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동두천시 보산동 관광특구 내 가게 250곳 가운데 일부는 문을 닫고 오산 미군기지 주변으로 떠났다. 장갑차 사건 등으로 매출액이 2~3년 전의 50% 수준에 머물러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군 재배치 계획이 결정타를 먹인 것이다.

동두천시에 따르면 이곳의 미군 관련 산업 규모는 연간 1400억원으로 지역 내 총생산의 18%에 이른다. 관광특구 입구에서 C마트를 운영하는 김모(69) 사장은 "시설 투자비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는 상인도 올 여름 미군이 이라크로 차출되면 문을 많이 닫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보산동 관광특구 내 땅값도 많이 떨어졌다. 상업지역 대로변은 평당 800만원, 이면도로는 200만~300만원선으로 최고 시세를 보였던 2~3년 전보다 30%가량 빠졌다. 정원부동산 이상기 사장은 "관광특구 앞에 경원선 복선전철 보산역이 2006년께 들어설 예정이어서 추가 하락 폭은 크지 않겠지만 거래 위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시장도 맥을 못추고 있다. 지난해 5월 분양 당시 웃돈이 1000만원 이상 붙었던 동두천 생연지구 현진에버빌, 송내지구 아이파크 일부 저층은 분양가에 매물이 나온다.

용산 외국인 임대주택 사업자도 비상이 걸렸다. 미군이 오는 12월부터 예산절감을 위해 용산 미8군 영외거주자의 임대방식을 월세형에서 전세로 바꿀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국내 시중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 감정가의 70%를 임대업자(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 형태로 지급할 방침이다.

글로벌마이다스 이근식 사장은 "전세로 바꿀 경우 임대수익률(현재 연 8~10%)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임대사업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산구 일대 주한미군과 군무원 등의 영외주택 수요는 3200가구 정도로 이곳 외국인 임대주택 수요의 70%에 이른다.

미군이 이전해 가는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K-6) 주변도 찬바람이 분다. 팽성읍 안정리 H중개업소 사장은 "지난 1월 초만 해도 외국인 임대주택을 짓거나 땅을 사기 위해 찾는 투자자가 많게는 하루 20명에 달했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한명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6일 평택이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된 데다 외국인 대상 임대주택이 너무 많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안정.송화리 일대에 1~2년 새 들어섰거나 짓고 있는 외국인 임대주택은 100여채나 된다. 이러다 보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새집이 30%를 넘고 임대료도 급락세다. 올 초 33평형짜리 월 임대료가 1300달러(150만원)에 달했지만 지금은 1100달러(127만원)로 떨어졌다.

미군 재배치에 따른 위험이 큰 만큼 미군 주둔지역 부동산에 투자할 땐 보수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동두천은 개발 재료가 남아 있는 경원선 복선전철, 평택은 연말 개통할 수도권 전철 역사, 포승공단, 평택항 주변에 선별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동두천.평택=박원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