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도 볕들 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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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성북·평창동 고급 단독주택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태영부동산 성기완 사장의 수첩엔 매수를 부탁한 사람들의 주문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매수 의뢰자들은 대부분 강남권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성 사장은 “매수자들이 원하는 가격대의 매물이 없어 거래를 못 할 정도로 요즘 고급 단독주택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에서 ‘만년 그늘’이었던 서울 단독주택이 요즘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도시형 생활주택과 사무실 등으로 단독주택의 쓰임새가 많아졌고 재개발·뉴타운 사업 등으로 헐리는 주택이 늘어나면서 희소가치도 커졌다.

◆쓰임새 다양해진 단독주택=다음 달 4일부터 지을 수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원룸·다세대·기숙사형)이 가격 오름세에 불을 붙였다. 주차장 기준 완화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이 수익 좋은 임대사업용으로 떠오르면서 수요가 확 늘었다.

삼선동 명가부동산 서영기 사장은 “도시형 생활주택 부지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 연초 3.3㎡당 1300만원 수준이었던 보문·돈암·삼선·동선동 일대 단독주택의 매매가(대지면적 기준)가 3.3㎡당 1500만원 이상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활발해진 뉴타운·재개발사업은 단독주택의 몸값을 올리는 재료다. 낡은 주택들이 헐리면서 남아있는 단독주택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국토해양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 42만7000여 가구였던 서울의 단독주택 수가 1년 만에 41만3000여 가구로 줄었다.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옮기는 수요도 늘고 있다. 건축 허가 제한 등의 규제로 단독주택 전용 주거지인 성북·평창·삼성동 등지에 수요가 몰린다. 성북·평창동의 주택은 지난해 초까지 3.3㎡당 1000만원 선이면 살 수 있었으나 지금은 3.3㎡당 1500만원 이상을 호가한다. 삼성동 부동산패밀리 양창섭 사장은 “최근 강남권 아파트값이 오르면서 고급 단독주택을 찾는 수요자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주택업무시설 밀집 지역의 단독주택은 빌딩 임대료 상승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빌딩 임대료가 크게 오르면서 단독주택을 개조해 업무용으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삼·논현·동교동 일대에 이런 사례가 많다.

동교동 조은부동산 김석규 이사는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단독주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무실로 개조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올 초 3.3㎡당 1600만~1800만원 하던 동교동 단독주택을 지금은 3.3㎡당 1700만~200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가회·삼청동 등에는 단독주택의 구조를 바꿔 갤러리나 전시관을 들이기도 한다.

◆개발·임대 통해 수익 올리기=도시형 생활주택은 임대사업자에게 짭짤한 수익이 기대되는 상품이다. 주차장 설치 기준이 크게 완화된 기숙사형은 대지면적 132㎡ 이상 되는 단독주택지에도 넉넉하게 지을 수 있다.

원룸형은 198㎡ 이상이면 된다. 도시형 생활주택 컨설팅 업체인 야촌주택 김인호 전무는 “서울 봉천동 단독주택을 3.3㎡당 1400만원에 매입해 사업하는 경우를 가정했을 때 임대사업자는 연 10% 안팎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단독주택을 사무실로 바꿔 임대할 경우 주거용으로 전세를 놓을 때보다 수익을 더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논현동 270㎡ 주택의 경우 일반 전세는 6억원 선이지만 사무실 임대는 보증금 1억원에 월 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단독주택을 갤러리 등으로 활용하는 경우에는 지가상승과 임대료 절약이라는 효과가 기대된다. 삼청동 내에 갤러리 등으로 쓰이는 단독주택 매매가는 연초 3.3㎡당 4000만원대 이상에서 최근 5000만원대 이상으로 올랐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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