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재벌정책]5.<끝> 김대중 당선자·4대그룹회장 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구상하는 재벌개혁의 윤곽이 드러났다.

13일 4대그룹 회장들과의 조찬에서 밝힌 金당선자의 개혁방향은 국제통화기금 (IMF) 이 요구하는 내용인데다 재벌들 입장에서도 필요한 구조조정 과제를 담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그룹총수들도 신정부의 이같은 개혁에 적극 동참하고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사실 재벌대책은 정권교체기마다 새정부가 늘 들고나오는 단골메뉴였다.

그러나 이번 신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은 과거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번의 재벌개혁은 국가부도위기와 IMF 관리체제라는 사상 유례가 없는 상황아래서 나라경제의 명운을 가르는 국가적 선택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엄연히 현실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경제단위의 하나이고, 재벌문제는 한국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중 하나다.

이를 부인하고서는 개혁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정권의 재벌정책이 실패한 것은 이같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막연한 명분론에 이끌린 '길들이기' 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재벌문제를 푸는 길은 과거에 대한 단죄나 징벌적인 규제가 아니라 한국경제 시스템 자체를 국제기준에 맞게 바꾸고 재벌들도 그 기준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金당선자와 4대그룹 총수가 합의한 5개항의 구조조정방안은 종전의 재벌대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재벌구조 개선을 위한 원칙을 제시하고 재벌들에게 자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되 그렇지 못한 재벌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10대, 20대그룹이 문제가 아니라 재무구조가 얼마나 건실한가, 세계속에서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는가가 (기업도태의) 기준이 될 것" 이라는 金당선자의 말에서 그 뜻을 읽을 수 있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핵심업종을 택해 전념해야 하는 것은 재벌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추진해야할 과제다.

상호지급보증의 해소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도 개방시대에 국제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다.

기업부실에 대해 오너와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 역시 시장경제원리의 기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하겠다는 金당선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의 자기재산 제공에 의한 증자나 대출 보증' 이라는 대목만큼은 '오너의 책임강화' 란 대전제아래서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도 원칙을 한번 무너뜨리면 경제 전체의 기본이 흔들릴 수 있다.

金당선자의 말은 자칫하면 '재산권 보호' 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허물지도 모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그룹총수들의 재산은 이미 대부분 은행에 대한 지급보증 등에 쓰이고 있다는 현실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같은 개혁과제를 고금리.고환율에 살인적인 자금난으로 미증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단기간안에 추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구조조정을 추진해야겠지만 서두른다고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미 일부 재벌기업들이 자발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만큼 가급적 적응할 수 있는 시간여유를 주되 경제 전체에 미치는 충격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김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