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유일 농요 전승자 김완수 마들농요보존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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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일 농요 전승자 김완수 마들농요보존회장
“무형문화재 22호…보존회관 짓는 게 꿈이죠”

무대랄 것도 없다. 그저 너른 땅만 있으면 판이 벌어진다. 꽹과리가 이끄는 사물놀이패가 흥을 돋우면 고단한 농사가 이내 흥겨운 잔치로 탈바꿈한다. 아침 모심기로 시작해 저녁 새 쫓기로 끝맺는 마들농요는 1년 농사를 하루의 시간 순서대로 바꿔 보여주는 서울유일의 농요다. 예능보유자인 김완수(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2호)씨의 노력으로 지난 1996년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 18일 남산 한옥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던 마당에 하얀 옷의 일꾼들이 등장한다. 손에는 하루 일감인 모가 한 움큼씩 들려있다. 일과 시작을 알리는 아침노래가 끝나면 모두들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모를 심기 시작한다. 손에 든 모를 세며 하나·둘·셋장단을 맞추면 곧 흥겨운 노래가 이어진다.
 (사)마들농요 보존회 김완수(64사진)회장은 “농요에는 아무리 해도 힘든 농사를 흥겨운 가락으로 승화시켜 오히려 일상을 즐기던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노원지역에서 불리던 마들농요는 현재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해지는 농요다. 모내기 할 때부르던 ‘열소리’와 호미로 밭 맬 때 부르던‘두루차소리’ ‘미나리’, 하루 일과가 끝나갈 무렵 신나게 부르던 ‘꺽음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여기에 ‘방아타령’ ‘넬넬넬 상사도야’ ‘우야 훨훨’ 등이 곁들여져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7년여 노력끝에 마들농요 복원
마들농요는 지난 1996년 한국민속축제에 서울시 대표로 처음 선을 보인 이후 연 20여 차례 공연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 빛을 보기까지는 숨은 노력들이 많았다. 1990년대에 붐처럼 일어났던 지역 토착 문화찾기 움직임 속에서 당시 문화재청의 이소라 전문위원이 전국의 농요를 채보하던 중 이 지역에서 전해오는 농요가 독특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 이 지역 소리꾼으로 통하던 김완수씨를 수소문한 끝에 농요를 다시 복원하자는 데 뜻을 모은다. 이후 장장 7년동안의 눈물나는 노력이 시작된다. “정말 안 가본 경로당이 없고 이 지역에서 소리 좀 한다하는 어르신 중 안 만나본 분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곡조가 틀려 같은 노래인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그게 쌓이다 보니 하나의 큰 노래가 되더군요. ” 김 회장은 당시를 ‘배고픔’으로 회고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게는 소리 말고는 특별한 생업이 없었다.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김순태 선생님으로부터 선소리산타령을 사사받은 이후 소릿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농요를 복원 하기로 한 후 7년 동안에는 소리마저 잊고 마들농요 복원에만 매달렸다.
 
처음에는 경로당 어르신들이 낯선 젊은이를 소리판에 끼워주지 않아 며칠이고 막걸리며 빈대떡을 싸들고 찾아가 얼굴을 익혔다. 그런 끝에 겨우 몇 소절 얻어 듣고 흥에 겹기도 했다. 그러다 농요 전곡을 비교적 제대로 알고 있는 어르신을 만났다. 지금은 작고한 윤선보 옹. 그를 만나면서 복원 작업에 탄력이 붙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결국 마들농요는 처음 발표를 시작하자 마자 서울의 대표 농요로 자리 잡았고, 그 전수자인 김회장이 1999년 12월 서울시로부터 무형문화재 제22호로 지정받으면서 그 결실을 맺는다.

마들농요 보존회관 건립이 소망
김 회장은 “요즘엔 농요에 대한 관심이 너무없다”며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다보니 노래도 빠른 템포의 음악만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노래가 그 시대 분위기와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남지만 세태를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전통 문화의 명맥은 제대로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 마들농요 보존회는 주 2회씩 모임을 갖는다. 30평 남짓한 김 회장 집 옥상이 연습장소. 대개 4월부터 시작해 11월까지 1달 평균 2~3번공연이 있는데 마땅한 연습공간도 없다. 가까운 곳에 상시 공연장은 커녕 연습공간도 없다는 점이 너무 안타깝다는 김회장에게는 보존회관을 짓는 것이 남은 소망이다. 그는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내가 가진 전 재산인 집을 팔아서라도 거기에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보존회관 구석에서 새우잠을 잔다 해도 마음만은 모두 가진 것처럼 풍요로울 것 같다는 김회장. 그에게선 아련하게 가슴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너른 들녘, 푸른빛의 풀냄새가 폴폴 풍겨온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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