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벼룩시장 참 좋네요"…각자 들고온 물건 흥정하며 생활정보 교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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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블라우스 하나에 1천원, 원피스 한벌은 1천5백원. " 지난 6일 경기도용인 수지지구 현대아파트 박완정 (34) 씨네 집에서는 다섯 명의 주부들이 매달 한번 모이는 친목모임이 열렸다.

한때 본지 주부통신원으로 활동한 이후 2년째 친구처럼 지내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날은 만나면 반가워서 서로 수다만 떨다 시간을 다 보냈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 보따리장수들이 모인 양 옷가지와 화장품을 늘어놓고 한바탕 흥정이 벌어진 것이다.

심각한 경제상황을 고려해 뭔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박완정씨가 '안방 벼룩시장' 제안을 했고 최은령 (36.서울서초구잠원동) 씨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모두 두 손을 들어 환영한 것. 이날 선보인 물건들은 자신들이 입던 원피스.재킷에서 부터 스카프.아동복.빗.스타킹.화장품까지의 생활필수품들로 모두 50여 점이나 됐다.

특히 이경희 (33.서울서대문구홍제동) 씨는 친구남편 의류공장의 모기업이 부도가 나 판로가 막힌 스웨터류 10점을 가져와 판매에 나서 IMF바람을 실감케했다.

보따리를 풀자 한번도 안 입고 둔 원피스,치수가 커서 넣어둔 고급 팬티스타킹 등 예상외로 서로 갖고 싶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서로 갖겠다며 실랑이 (?

)가 벌어진 것도 잠시. 조인경 (33.서울송파구방이동) 씨의 제안으로 경매 방식이 채택돼 안방 벼룩시장은 더욱 활기찬 분위기. 빗은 5백원에, 스카프는 3백원에 거래되며 웃음꽃이 피었다.

이날 모임의 맏언니 격인 정옥선 (41.서울송파구오륜동) 씨는 "참 좋네요. 반가운 사람들과 즐겁게 식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게다가 좋은 물건까지 한아름 가져가니까요. 작은 일이지만 이런 마음으로 계속 살림을 한다면 우리 경제도 곧 살아나지 않겠어요" 라며 즐거워 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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