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패러다임]10.<끝> 전문가 좌담회…"변신 쓴 약 복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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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의 파고 (波高)가 새해들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금융시장은 혼미상태를 거듭하고 고물가.고실업.고금리의 먹구름이 우리경제를 더욱 짙게 덮어가고 있다.

본지는 IMF 파도가 밀어닥치기 전인 11월초부터 '기업이 변해야 산다' 는 대전제 아래 변신의 지향점을 지적한 '신경영패러다임' 시리즈를 게재해왔다.

경영패러다임의 대전환은 IMF라는 뜻밖의 외풍을 만나 기업들의 절실한 과제로 더욱 성큼 다가왔다.

신정부 역시 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조하고있다.

시리즈 마지막회로 경영패러다임 전환의 구체적 해법과 전망을 산.학.연 전문가들에게 들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박상용 = 독자들, 특히 경제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어온 '신경영패러다임' 시리즈가 이제 끝납니다.

이 시리즈가 그동안 지적해온 투명경영,가치경영, 정도 (正道) 경영등이 바로 IMF가 요구한 궁극적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선 대기업의 구조조정등 당장 시급하게 추진해야할 IMF시대 기업의 생존전략부터 논의를 해보지요. ▶이윤호 = 지금은 'IMF패러다임' 이 필요합니다.

올해부터 당장 각 그룹은 상호지급보증을 줄이고 결합재무제표 도입의 준비도 해야합니다.

재계는 평균 4백%인 부채비율을 2백%로 다이어트하는 재무구조 개선도 서둘러야 합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박병재 = 지난해부터 기업들이 경영패러다임을 바꾸려고 했으나 대책도 마련하기 전에 IMF쇼크가 닥쳤습니다.

이를 기회로 삼는다면 한차원 발전된 경제구조를 만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권회사가 활성화되지않고 금융권 차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않는 상황에서 위기극복 방안을 찾기는 지난한 일입니다.

▶이윤호 = 자금시장이 경색되고 금리가 30%에 달하는 상황에선 구조조정이 어렵습니다.

기업의 도산위기가 더 문제여서 우선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하고 금리도 20%이하로 떨어뜨려야 합니다.

M&A (인수합병) 도 어렵고 상호지급보증으로 계열사들이 얽혀있으며 정리해고도 곤란한데 이같은 문제들을 단시간내에 혁명적인 해결을 시도한다면 기업들의 잇따른 도산을 불러올 우려가 있습니다.

▶박상용 = 기업들의 부담을 덜기위해 정리해고를 도입해야하지만 기업들도 모든 것을 껴안고 간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부실 계열사는 사가지않으니 우량기업도 필요하면 팔아야합니다.

버리기 아까운 사업을 일찍 팔아서 지금 상대적으로 덜 위기를 맞고있는 기업들도 있지않습니까. ▶이윤호 = 대기업들이 부가가치를 못내는 계열사를 끌어안았던 것은 외형이 커야 우수한 인재가 모이고 자금도 끌어당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외형위주 의식에서 벗어나 돈되는 사업을 해야합니다.

▶박병재 = 상호지급보증 철폐나 결합재무제표 도입 같은 것들은 어차피 해야할 일입니다.

계열사에 따라 부 (富)가 축적되지않은 상태에서 전략적으로 상호지급보증을 이용해왔던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지금처럼 경제가 비정상인때 상호지급보증 철폐가 지칫 잘못 추진되면 기업들에 큰 타격을 주게됨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합니다.

▶박상용 = 상호지보해소가 제데로 이뤄지려면 금융권의 개혁이 병행되야합니다.

지급보증이란 바로 금융기관이 여신 평가를 제대로 못하니까 덩치만 보고 돈을 빌려주고 그러자니 다른 계열사의 보증을 원했던 게 사실아닙니까. 따라서 하루아침에 상호지급보증을 끊으면 여신이 아예 막힐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우리의 금융기관들의 처지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말한 '난로위의 고양이' 를 비유할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뜨거운 난로에 데면 다음부턴 차가운 난로에도 안간다는 겁니다.

여신심사 능력이 없으면 아예 돈줄을 쥐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기업들이 당장 시급한 투자마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윤호 = 정부측이 지금같은 추진속도로 일을 한다면 IMF요구 이상으로 오버슈팅 (overshooting)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IMF요구를 준수하는 것만도 고통스러운데 그보다 강도높게 또 일정을 앞당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업이 적응할 시간을 줘야합니다.

IMF가 요구를 강하게 해와도 정부가 시간을 벌어줘야할텐데 그보다 더 서두르는 것은 현실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박상용 = 기업의 방만한 경영이나 중복과잉투자는 분명 잘못된 일이지만 상호지급보증이 방만한 경영을 지탱해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엔 정리해고를 못하기때문에 그랬던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정리해고는 못하고 회사는 돌려야하니 덩치를 계속 키워갈 수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정부는 상호지급보증해소에 타임 스케쥴을 만들어 80%~60%~40%씩 단계적으로 축소해나가야하고 대기업들도 밑빠진 독에 물붇기 식으로 서로 돕는 일은 점차 줄여야합니다.

계열사들은 홀로서기 경쟁력을 키워야합니다.

▶박병재 = 기업을 인수합병해야하는 것은 슬픈 현실이지만 이것이 제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외국자본의 유입이 시급합니다.

외국 자본이 국내에서 마음놓고 활동하는게 바로 글로벌화로 외국 자본과 마음을 툭 털어 놓고 함께 일을 할 줄알아야 합니다.

사회구조 전체의 변화도 수반돼야 합니다.

기업에는 선진화를 요구하면서 정치, 금융권, 국민은 후진적 잔재를 갖고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근로자들에겐 요즘도 무조건 평등을 앞세우는 성향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것같은데 그래서는 경쟁력이 향상될수 없습니다.

▶이윤호 = 글로벌 시대에는 자본이 어디에서 들어오던지 문제가 안됩니다.

한국기업과 한국경제가 먼저 살아나야 합니다.

국수주의적인 생각을 갖고있으면 외국자본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박상용 = 경영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성과급 제도도 철저히 도입돼야 합니다.

미국의 디즈니사는 회장에게 연간 창출 이익의 2%를 주도록 계약서상에 명기하고있고 그래서 마이클 아이즈너 디즈니 회장은 한해에 8천만달러를 번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이 그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성과에 대해 과감하게 보상해야 경영진이나 임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됩니다.

또 제도와 법을 무시한채 혈연.지연.학연등 사적인 관계에 의존하는 구습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서구에서 로마법과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중시한 것처럼 법과 공적인 시스템이 중시되는 환경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이윤호 = 의식변화는 장기적인 과제입니다.

그러나 IMF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시스템을 당장 요구하고 있고 그래서 이에 따른 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합니다.

지금 평가하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새 정부의 인수위가 내놓는 정책중에 시장이 해야할 일과 정부가 해야할 일을 혼동하는 사례가 엿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박상용 = 신 정부가 걱정하는 일은 감량경영에 따른 정리해고로 근로자들의 고통이 많아져 그들이 정서적으로 그런 상황을 수용하지않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을까 하는 점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회적인 불안 요인도 됩니다.

기업들도 솔선수범해야합니다.

▶이윤호 = 구조조정을 고통없이, 눈물없이 한다는 생각은 빨리 버려야합니다.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변화에 뒤쳐지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전경련 회장단 회의가 오는 15일 열리고 정치권도 임시국회를 열어 고용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정부나 기업, 근로자 모두 고통을 분담해야 할 것입니다.

▶박병재 = 기업들도 앞으론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IMF요구대로 하면 자연스럽게 오너의 지분이 낮아지게됩니다.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자본을 늘릴 경우 오너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상호지급보증이 줄어들면 계열사간 연관성이 희박해지고 수익성이 없는 사업은 바로 문을 닫게됩니다.

▶박상용 = 우리 대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도 선진 기업처럼 분권화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소수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이면 경제구조가 다양하고 복잡할 경우 문제가 많을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회가 의사결정구조의 핵심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기업에서는 이사가 하나의 직급처럼 되버려 이사회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의식이 없는 이사도 상당수입니다.

이사 수가 많은 것도 문제입니다.

일본의 소니는 이사수를 40명에서 20명으로 줄였습니다.

선진기업들도 10~20명 수준입니다.

이사 수가 작아야 심층적으로 논의가 될 수 있습니다.

▶박병재 =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등 임원들이 각 직급별로 모여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현대그룹은 지난해부터 사외이사제를 일부 계열사에서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경영의 투명성과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였는데 그 결과 장점이 많아 올해부터 전 계열사로 확대 시행할 계획입니다.

▶이윤호 = 사외이사제도가 성공하려면 경영진의 결정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합니다.

아직은 미흡하다고 봅니다.

거수기에 불과한 이사회는 조직이 어떠냐에 상관없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박상용 = 우리 대기업들은 전문경영인을 2~3년마다 바꾸는데 최소한 5~6년 책임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야 임기중에 과감하게 사업을 벌여나갈 수있습니다.

그렇다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기아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최고경영자가 누구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의사결정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정리 = 박영수·이원호·심재우 기자

참석자 : 박병재 현대자동차 사장

박상용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이윤호 LG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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