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기자의 JOB 카페] 5월 1일은 ‘노사 감사의 날’ 어떨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5월 1일은 세계 노동절이다.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노동운동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그해 5월 1일 시카고 중심부인 미시간 애비뉴에서 8만 명의 노동자가 하루 8시간의 노동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노동자와 집회 중인 노동자 간에 충돌이 빚어졌다. 이를 진압하던 경찰이 발포해 두 명이 숨졌다. 격분한 노동자들은 5월 4일 시카고 헤이마켓 광장에서 30만 명이 모여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진압을 자제했다. 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해산하기 직전 경찰이 도열해 있던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 사고로 경찰관 7명이 숨졌다. 집회를 주도한 4명은 사형, 3명은 장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명은 자살했다. 아직도 폭탄을 누가 던졌는지 밝혀지지 않고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당시는 폭력과 살인·납치도 마다하지 않는 극좌파 성향의 노동기사단(Knights of labor)이 미국 전역의 노동운동을 지휘하던 시기였다. 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 노동기사단은 7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그러나 헤이마켓 사건으로 노동기사단은 순식간에 쇠퇴해 몇 년 뒤 소멸됐다.

1889년 7월 1일 전 세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자, 노동운동가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제2인터내셔널 창립 대회를 열었다(제1인터내셔널은 1864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규약 등을 만들어 설립됐으며, 정식 명칭은 국제노동자협회였다). 여기서 미국 시카고 사태를 기념해 노동절을 정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노동절은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1882년 9월 5일 미국 뉴욕의 센트럴 노조 서기였던 매튜 맥과이어가 주도해 기념행사를 열었다. 10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가 하루는 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1894년 이들의 뜻이 받아들여져 연방법으로 노동절이 지정됐다.

한국도 처음엔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했다. 그러다 1963년 법으로 한국노총 창립 기념일인 3월 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했다. 군사독재의 때를 벗겨내던 94년에 다시 5월 1일로 바뀌었다.

노동절의 역사에는 이념이 녹아 있는 셈이다. 노동절을 만들었던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사용자를 타도 대상으로 여기던 시대는 옛이야기가 됐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던 시절도 지났다. 노조의 이념 투쟁이 지배하는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선 노사 협력주의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경제위기에 사용자나 노동자 모두 어렵다. 그래서 올해 노동절은 이념의 때를 벗겨내고, 노사가 서로 감사하고 위로하는 ‘노사 감사의 날’이 되면 어떨까 한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