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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즐겁게]돼지고기…겨울 혀끝 녹이던 '豚家의 보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겨울철에 맛이 나는 음식은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빼놓을 수 없는 것에 돼지고기가 있다.

이렇다 할 냉장시설이 없던 옛날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여름철의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 이란 말은 돼지고기가 겨울철의 별미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서울에서도 4대문만 벗어나도 넓은 앞마당이나 뒷마당이 있으면 텃밭에 채소를 가꾸기도 했지만, 울타리안 한편 구석에 돼지를 치는 집이 적지 않았다.

개량 돈종이 아닌 순종 토종돼지이다.

아낙네들이 남의 집 뜨물까지 얻어다가 그 뜨물에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며 곯은 늙은 호박 따위를 주어 기르는데, 한동안은 잘 먹이고 그 다음 며칠 동안은 뜨물을 주지 않는 것이다.

잘 먹었을 때의 그것은 살이 되고, 못 먹었을 때는 기름이 된다.

그래서 살.비계.살의 3층제육이 된다.

이를 가리켜 삼겹살 돼지고기라고 했으며, 요즘 말하는 돼지고기의 삼겹살과는 전혀 질이 달랐다.

이처럼 아낙네들이 키운 순종돼지를 가리켜 '걸귀' 라 했다. 그 걸귀의 맛은 부드럽고 더없이 고소해서 양돈장의 양돼지의 맛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고추장에 발라 숯불에 석쇠구이를 해서 들기도 했지만,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두부와 움파.깨소금등 양념을 뿌린 돼지볶음을 즐겨 들곤 했다.

그런 돼지볶음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또 서울 사람들은 냄새 나지 않게 삶은 돼지고기 편육을 역시 새우젓에 찍어 들곤 했다.

요즘도 그런 돼지고기 편육은 돼지고기 전문점이 아닌 평양냉면집이며, 강원도의 막국수집에서 만나게 된다.

서울 사람들은 돼지고기에 새우젓이 빠지면 못 먹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그저 잘 익은 김치에 싸서 먹거나 된장에 상추등으로 싸서 먹기도 하는데 특히 개성.강화 지역에서는 고수로 쌈을 해서 즐겨 들었다.

고수란 쑥갓 보단 가늘고 아스파라거스 보다는 굵다.

초심자는 냄새가 지독해서 외면을 하기 일수이지만 중국요리에는 빠지지 않는 향채 (香采) 다.

순종토종돼지인 걸귀는 지금 없지만 제주도를 위시한 지리산 지역에서는 토종돼지가 양산돼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제주도의 돼지고기라 하니까 생각나는 일로 30년쯤 전만해도, 코막고 할 얘기로, 제주의 돼지는 냄새나는 곳에서 키웠고, 냄새나는 것을 먹이로 해서, 일 (?) 을 보기 위해 허리춤을 풀고 앉으면, 이를 받아 먹으려고 돼지란 놈이 꿀꿀거리며 다가들었다.

그래서 한 모퉁이에 이를 쫓기 위한 몽둥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기겁을 하고는 다시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을 뿐더러, 좋아하는 돼지고기도 아예 입에 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제주도에도 재래식 양돈법에 의한 토종돼지는 사라졌으며, 위생적으로 처리된 대형 양돈장에서 토종돼지가 그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고 있다.

남제주군표선면성읍리는 제주도의 옛마을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어 민속마을로 지정되어 있고, 제주도 고유의 향토미각도 가장 많이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돼지고기인데, 그 특색은 돼지를 잡을 때 짚더미 위에 올려 놓고 털을 그을리는데 있다.

이를 '기실린 도새끼' 라 한다.

이 지역의 돼지는 비계가 야들야들 부드럽고, 유난히 고소하다.

현재 이 마을에는 68개의 업소가 밀집되어 있으며, 그 부드러운 돼지고기 맛으로 관광객들이 떼지어 몰려 들고 있다.

돼지고기는 가장 서민적인 육류이기 때문에 전국 도처에 이름 있는 전문점이 허다하다.

그 많은 집들 가운데 내 레이다망에 걸린 집들은 옆의 표와 같다.

백파 홍성유

〈'맛있게 즐겁게' 는 당분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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