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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 양도세 완화, 정부 믿다 뿔난 사람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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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말만 믿고 집을 매매한 사람들 가운데 손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게 생겼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양도세 개편안이 국회에서 수정될 게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15일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규정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냥 ‘이런 입법을 추진하겠다’ 정도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부는 확정된 것인 양 발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3월 16일자 거래부터 소급 적용하겠다는 단서까지 달았다.

호기로운 발표와 달리 국회 설득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국회 입법권을 무시한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부자 감세’라는 야당의 논리에 일부 여당 의원이 동조하면서 일은 꼬여만 갔다. 정부는 당황했고, 아예 없던 일로 하겠다는 여당을 설득해 지난 주말 간신히 절충안을 마련했다. 양도세 중과 조항을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폐지하고,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 같은 투기 지역에 대해서는 기존 양도세율(6~35%)에 10%포인트를 더 얹어 중과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16일 거래분부터 소급 적용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결국 예상 밖의 양도세를 내는 경우가 나오는 게 불가피해졌다. 정부 발표를 믿고 지난달 16일 이후 덜컥 집을 팔았다면 소급 적용 여부에 따라 세금이 상당히 달라진다. 양도 차익이 1억원이라면 소급 적용이 안 될 경우 2390만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정부가 양보한 만큼 국회도 소급 적용은 인정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회 조세소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최경환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급 적용은 없다”고 했다. 소급 적용이 되더라도 투기 지역에 속한 강남 3구의 집을 판 사람은 양도세를 더 내야 할 형편이다. 이들은 정부 발표대로 최고 35%의 양도세를 낼 줄 알았지만 절충안에 따르면 최고 45%를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가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간주해 집을 산 사람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절충안에 따라 ‘내년까지 한시 시행’ 후 중과 조항이 부활되면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 문제는 2년 뒤에 가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손해를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 자산컨설팅부 양길영(세무사) 차장은 “강남에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의 속성상 여러 군데 조언을 구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 거래도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해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일부에서는 손실을 본 사람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의 정책은 신의성실 원칙에 기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손해가 났으니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20일 ‘국민 손해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정부가 책임질 건 책임지겠다”고 답했다.

주택 매매자가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는 “세금은 법률로 결정한다는 것이 확고한 원칙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편안을 국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책임을 물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로텍의 이헌욱 변호사는 “정부가 입법 예고한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변경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때마다 정부가 배상 책임을 질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이번 일로 정부는 스타일을 구겼다. 배상 책임은 없다고 해도 정책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안종범(경제학) 교수는 “관행에 젖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면 무조건 통과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며 “세법은 국회를 통과해야 효력이 있는 만큼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더라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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