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골목길 성명’ 내고 출석 불응하다 새벽 압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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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검찰에 소환된 첫 전직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그가 대검찰청에 출두한 것은 1995년 11월 1일. 기업인들로부터 수천억원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대검 청사에 도착한 직후 7층 중수부장실에서 안강민 중수부장과 차를 마신 뒤 11층 특별조사실로 올라갔다. 조사를 담당한 이는 문영호 중수2과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문 과장이 자금 수수 과정을 묻자 “밝힐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새벽 출두 17시간 만에 귀가했다.

같은 달 15일 검찰에 다시 소환된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구속됐다. 그는 수감되면서 “우리 정치인들의 모든 불신과 갈등을 가슴에 안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뇌물수수와 내란죄 등으로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다.

두 번째는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혐의는 내란죄 등이었다. 그는 같은 해 12월 2일 검찰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불응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서울 연희동 집 앞에서 “검찰 소환은 진상 규명보다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다.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이른바 ‘골목길 성명’을 읽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다음 날 새벽 수사관들을 합천으로 보내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을 집행한 뒤 그를 안양교도소로 압송했다. 종교시설을 개조해 만든 10㎡ 독방에 수감된 전 전 대통령은 독방 옆 조사실에서 김상희 서울지검 형사3부장 등 네 명의 검사에게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와 함께 단식에 들어갔다가 18일 후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전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했다.

검찰에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서면조사를 받은 전직 대통령도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에 대한 12·12 군사반란 사건 수사 때 검찰은 최규하 전 대통령을 상대로 서면조사를 실시했다. 최 전 대통령은 당시 답변을 거부했다. 97년 외환위기 책임 규명을 위한 수사 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면조사를 받기도 했다.

한편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26일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일정을 발표하면서 전직 대통령 출두 때 중수부장과 차를 마신 전례와 관련해 “생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수선한 봉하마을=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날짜가 정해지자 그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은 침울한 분위기에 빠졌다.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심경에 관한 질문에 “아무 말씀이 없었다”고 답했다. 사저 주변도 시종 어수선했다.

이날 오전 11시쯤에는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부산·경남 지역의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 마을을 찾아 보수단체 등을 비판하는 전시물을 세워 놓았다. 서울에서 왔다는 이모(38)씨는 사저 앞에서 기타를 치며 민중 가요를 불렀다. 경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와 비판자들이 돌발집회 등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김해=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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