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holic] 두 바퀴로 호흡한 서울 … 사람 냄새 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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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대행진에 참가한 6000여 명의 자전거 행렬이 25일 오전 길이 1.47㎞의 올림픽대교를 건너고 있다. [김형수 기자]

서울이 두 바퀴로 하나 되던 날이었다. 25일 오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는 ‘하이 서울 자전거 대행진’에 참가를 신청한 시민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지하철 몽촌토성역은 자전거를 지거나 끌고 올라오는 사람들로 붐볐다. 집부터 자전거를 타고 나온 이도 많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전거 타기 좋은 날”이라며 힘찬 인사말을 던졌다.

오전 9시, 두 바퀴 축제가 시작됐다. 6000여 대의 거대한 자전거 행렬은 2㎞나 이어졌다. 서울 도심에서 처음 보는 장관을 연출했다. 올림픽공원에서 올림픽대교까지 가는 길엔 바람이 찼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바퀴를 굴렸다.

올림픽대교를 넘어가자 군데군데 조성된 공원과 녹지가 우거진 길이 나타났다. 어린이대공원도 보였다. 새벽 비 맞은 잎사귀들의 풀내음이 코끝에 닿았다. 토스트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탔고, 떡집에서 갓 뽑아 올린 가래떡 냄새가 구수했다. 휴일 아침부터 일하는 용접공의 쇳소리도 들렸다. 횡단보도 앞에선 엄마 손을 붙든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미소도, 목욕하러 나온 아주머니의 하품하는 모습도 보였다. ‘언니네 화장품’ ‘돼지슈퍼’ ‘우리떡방앗간’ 등 작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릴 때는 볼 수 없었던 사람 사는 표정들이 두 바퀴로 달리자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리막길에선 한쪽 팔을 높이 들어올려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반대 차로에서 자동차를 타고 지나던 시민들은 속도를 늦추고 창문을 내려 긴 행렬을 카메라에 담았다. 구경 나온 시민들은 “파이팅” “힘내세요”라며 격려를 보냈다.

참가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값비싼 자전거와 녹이 슨 자전거가 함께 어우러져 달렸다. 헬멧과 사이클용 복장을 단단히 입고 나온 이들만큼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온 이도 많았다.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이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천천히 달리며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발랄한 청바지 차림으로 나온 원미현(24·회사원)씨는 “어려운 경제용어나 정책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녹색성장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바퀴로 달리니 이웃의 소리가 들렸다. 사람 냄새가 났다. 자전거 대행진은 자전거가 도로에서 더부살이하는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나 도로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펼쳐 보인 시험의 장이자 축제의 마당이었다.

임주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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