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중국집 주인과 계약하려 한 달째 자장면 먹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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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석 과장이 주민들을 식사에 초대해 소규모 사업설명회를 열고 있다. 최 과장은 “이렇게 매일해도 한 달에 한 건의 계약을 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이상 기자]

 요즘 수도권 아파트가 잘 팔리고 미분양도 많이 해소됐지만 지방 주택시장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2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16만1972가구(국토해양부 집계)로 서울과 경기도를 뺀 지방에 84%가 몰려있다.

이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지방에서 신규 공급을 중단한 채 미분양 아파트 판매에만 힘을 쏟는다. 광주광역시 ‘광천 e-편한세상’ 분양 현장의 마케터(고객을 상대로 상품을 파는 사람)들을 25일 밀착 취재했다.

오전7시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 앞. 대림 e-편한세상 분양대행사인 내외주건의 마케터 최종석(31) 과장은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광고지를 뿌리느라 바쁘다. 한 시간여 “대림 e-편한세상입니다. 편한 하루 보내세요”란 인사와 함께 광고지를 나눠 주지만 갈 길 바쁜 시민들은 눈길 한번 건네지 않는다. 한 시간여 아침 일을 끝낸 여섯 명의 마케터가 견본주택에 모여 저마다의 스케줄을 점검한다.

미분양 마케팅이 어려운 건 아파트가 워낙 비싼 ‘상품’이어서 잠재 고객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따라서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의 정보를 얻는 일이 우선이다. 최 과장이 7개월 동안 광주 일대 고등학교 동창회보 등을 뒤져 확보한 1000여 명의 고객카드에는 본인과 배우자의 생일은 물론이고 결혼기념일, 대출금, 개인 고민 사항 등이 빽빽이 적혀 있다. 그는 “생일에 케이크를 보내거나 자녀 학교 배정까지 챙길 줄 알아야 고객을 놓치지 않는다”면서도 “그들이 잘 만나 주지 않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최 과장은 10시쯤 선물보따리와 카탈로그를 챙겨 견본주택을 나섰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점심 약속을 잡아 놨기 때문이다. 식사 전 다섯 명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몇몇이 “아파트 품질은 좋지만 살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최 과장은 실망하는 기색이다. 한 주부가 “서울에 있는 아들이 집값이 많이 떨어져 고민을 한다”고 하자 그는 “거기 전세 놓고 옆 동네 아파트를 사라고 하세요. 재개발되면 오를 거예요”라고 제시한다. 부동산 컨설팅도 중요한 일이다.

그 시간 견본주택에는 마술쇼를 보러 30여 명의 고객이 찾았다. 대림산업 길승진 소장은 “이런 이벤트도 없으면 소비자들이 견본주택에 올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한 주부가 “직접 보니깐 집이 괜찮네. 백화점도 가깝고…”라며 가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고객이 먼저 사겠다니 횡재한 셈이다. 직원 몇몇은 인근 중식당을 찾았다. 한 직원은 “갈등하는 식당 사장과 계약하기 위해 팀원들이 한 달째 돌아가며 자장면을 사먹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2시30분, 간단한 선물을 들고 인근 중개업소를 돌던 최 과장은 햄버거를 사 들고 차 안으로 돌아왔다. 점심은 주로 이렇게 해결한다. 부지런히 쫓아다니지만 허탈한 일이 더 많다. 그는 “1년 동안 스토커처럼 쫓아다녀 이달 초 간신히 가계약을 한 고객이 다른 아파트를 샀을 때는 너무 속상했다”고 한다.

마케터들이 한 건의 계약을 위해 쏟는 정성은 지속적이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매주 문자를 보내고 작으나마 선물도 뿌리며 가족을 식사나 영화에 초청도 한다. 지난달에는 계약금이 모자란 고객에게 마케터들이 돈을 모아 빌려 주기도 했다.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 회의는 밤 8시에야 시작됐다.

광주=권이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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