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구조조정]1.IMF 극복은 가정에서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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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세상이 바뀌었다.이제 달라져야 한다.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IMF시대는 새 생활의 틀을 요구하고 있다.가장과 주부.자녀 모두 예외일 수 없다.시련을 기회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새 생활문화' 를 제안하는 시리즈를 엮는다.

주부 정미영 (39.서울송파구방이동) 씨는 새해들어 남편에게 요구사항이 하나 생겼다.

본격적인 IMF시대를 맞아 남편도 집안에서 이것만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형광등을 갈거나 고장난 수도패킹하나 손 못보는 남편의 체질개선이다.

지난 연말 거실에 있던 컴퓨터와 TV를 작은방으로 옮기면서 전파사에 출장을 요청했다.

한시간정도 걸린 이 일은 전선을 새로 깐 것외에는 별 일도 아닌 것 같았는데도 재료비를 포함, 5만원을 지불해야 했다.

정씨는 1~2만원 정도가 고작일 것이라 여겼던 '안일한 생각' 에 대한 후회와 함께 '좀 고쳐달라' 고 해도 들은 척도 않던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화가 나서 남편에게 좀 달라지라고 했지요. 예전 같으면 미동 (微動) 도 안했을 남편이 이번에는 철물점에 가서 스패너와 펜치.못등 갖가지 공구를 사가지고 오지 뭡니까. ” 정씨는 흡족해 한다.

가장이 변해야 할 때다.

가장의 '집안일 하기' 는 더이상 아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규모있는 가계꾸리기의 필수요건이 돼버렸다.

가장의 모습은 으레 퇴근후 술약속이나 절대휴식, 휴일에는 등산.골프 아니면 잠자는 것이 이제까지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개선돼야 한다.

우선 정씨의 남편처럼 집안일 보기에 직접 나서야 한다.

목욕탕 하수관이 막히거나 수도패킹이 고장났을 때는 물론 두꺼비집의 휴즈만 나가도 당황해하며 기술자를 부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 평소 집에 간단한 공구를 마련해 놓고 직접 나서 고친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쓸데없는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완제품보다 비용이 절약되는 자가조립품 (DIY:Do It Yourself)에도 도전해 볼만하다.

현재 전국 8개 E마트와 서울.대구 프라이스클럽에는 조립식가구전문점 스칸디아가 입점해 있고 나산홈플레이스나 각 백화점에도 침대.책꽂이.탁자같은 가구에서부터 인형.자동차같은 장난감까지 다양한 DIY상품이 나와있다.

조립전 제품들은 볼트.너트로 조립하거나 홈을 맞추는 정도여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데 완제품보다 20~30%나 싼 편. 식당을 운영하는 김재상 (42.서울은평구불광동) 씨는 최근 취미생활패턴을 수정했다.

매주 골프를 칠 정도로 매니아였던 김씨는 골프장에 가는 횟수를 월1회이하로 줄였다.

대신 매주 일요일 오후 초등학생인 두 자녀와 함께하는 달리기와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골프장 한번 나가는데 그린피.캐디비.식사비를 포함해 적어도 20만원이 더 들어 부담스러운데다 혼자서 즐기는 것도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차제에 가족들과 함께 여가를 즐기는 방법을 찾은 것” 이라고 들려준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박정호 (45.인천시부평구산곡동) 씨는 자녀들의 사교육비 줄이기에 나섰다.

시간을 정해놓고 고교생 큰 아들의 물리와 수학을 각각 일주일에 두시간씩 봐주기로 한 것. 얼마전까지 과목당 30만원씩을 내고 과외를 받던 때에 비하면 가계부담이 크게 준 셈. 박씨는 “퇴근 후엔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느라 시간이 없는데다 자기 자식 가르치기가 쉽지 않을 것아 피해왔었다” 며 “막상 시작해보니 아이들과 대화시간도 늘고 좋은 점이 많다” 고 한다.

경기도분당에 사는 최기현 (31) 씨는 요즘엔 자가용 출퇴근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1천8백㏄ 중형차를 소유한 최씨는 서울 강남의 회사에 출퇴근할 경우 6만원어치 휘발유를 넣어도 일주일을 버티기가 힘겨워지자 승용차 출퇴근을 포기한 것. 이 덕에 월 40만원이 넘던 휘발유 비용이 월 15만원정도로 낮아졌다.

서울YMCA 박태범간사는 “IMF시대의 가장은 기존의 가부장적 가장과는 판이한 모습을 지녀야 한다” 며 “집에서는 불안해 하는 가족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정신적인 여유를 찾는 한편 생활속에서 근검.절약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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