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심층부서 ‘칼날 위의 꿀’을 만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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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했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구속을 계기로 역대‘대통령의 집사’들의 역할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최측근으로, 청와대의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하지만 집사 권력은 양날의 칼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집사들 치고 사법처리를 피한 사람이 드물었다. 중앙 SUNDAY는 YS 당시 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에게 8억원의 돈을 받아 형을 살아야했던 홍인길 전 총무수석을 만났다. 다음은 중앙SUNDAY 전문


권력은 ‘칼날 위에 묻은 꿀’이란 말이 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칼날 위의 꿀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이른바 ‘대통령의 집사(執事)’들이다. 그들은 대개 청와대 안살림을 맡는다. 대통령실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측근 중의 측근이다. 때론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등에 업고 스스로 권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권력의 끝은 대부분 대통령 임기 말의 혹독한 시련으로 귀결됐다. 노무현 정부의 정상문·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김대중 정부의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 김영삼 정부의 홍인길 총무수석이 모두 마찬가지다.

“정치자금 사흘 이상 안 지녀”
대통령 집사들은 대개 가신 출신이다. 그러나 가신이 모두 집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역할은 가신 가운데 입이 무겁고 대통령이 정말 믿는 사람에게 돌아가곤 했다. 역대 대통령의 집사들은 고향이 대부분 대통령과 같다는 점도 권력자들이 어떤 사람들을 집사로 택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홍인길 전 총무수석은 거제, 이수동 전 상임이사가 하의도, 정상문·최도술 전 비서관이 부산 출신이다.

집사의 전형은 청와대 총무비서관(YS 시절엔 총무수석)이다. 청와대 예산 집행과 행정관급 인사를 맡는 막강한 자리다.

가령 청와대 춘추관에서 확장 공사를 벌인다고 가정하자. 총무비서관실에서 외부 업체 선정에서부터 물품구매까지 모든 것을 맡는다.

대통령 집사의 비운은 ‘깃털론’을 유행시킨 홍인길 전 총무수석부터다. 1996년 한보사태로 구속되면서 그는 “권력이란 깃털 같은 것”이란 말을 남겼다. 그것이 ‘깃털론’으로 비화했다. 결국 YS 아들 김현철씨가 몸통으로 구속되는 계기가 됐다.

이젠 정계를 떠난 지 제법 오래된 그를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는 기자와 만나기는 했으나 “정치권을 봇짐 싸서 떠난 사람”이라며 한사코 정치 얘기를 피했다. 그러나 옛날 얘기가 나오자 몇 마디 청와대 수석 시절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총무 기능은 돈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는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지역유지들을 만나지 말라고 일찌감치 주문했다고 한다.

“YS 때 민정수석실에서 민심 파악한다고 다니면서 호텔서 안 자고 모텔이나 여관에 가서 잔다는 기다. 모텔에서 무슨 여론을 듣노. 내가 기밀비로 5000만원씩 떼줄 테니 그냥 호텔서 자라고 했다. 대신 유지들은 만나지 말라고 했다. 모텔서 자고 유지한테 돈 받으면 무슨 소용이고. 다 상식적으로 해야지.”

-기밀비(특수활동비)가 꼭 필요한 것인가.
“(단호한 어조로) 있어야지. 대통령 기밀비 갖고 ‘묻지마 예산’이라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묻지마 예산’이가. 대통령한테 필요하지. 얼마나 돈 들어갈 데가 많아. 세상사에 음과 양이 있는데, 음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 요즘은 기밀비가 200억원대로 늘어났데. 우리 땐 120억원 정도 썼는데.”

-재직 중 대통령 집사라고 불렸는데.
“집사? 그게 한문으로 뭐라고 쓰노. 난 집사 한 적도 없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는 잘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정상문 전 비서관과도 잘 아나.
“상문이, (고향 후배니) 잘~ 알지. 나한테 묻지 말고 서울시 가서 물어봐라. 정말 일 잘하는 친구다.”

-정상문 전 비서관은 유지도 직접 만났고, 그것을 별도 계좌를 만들어 관리했는데.
“그건 모르겠네.”
홍 전 수석이 ‘깃털론’을 얘기한 것처럼 박연차 회장은 “모기를 잡으려 대포를 쏜다”고 항변했다.

그래서 “박연차 게이트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세상에선 누군 좋은 사람, 누군 나쁜 사람 그러는데 보는 관점에 따라 전부 좋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정치 다시 하고픈 마음은 없나.
“(최근) YS가 ‘다시 (정치)해야제’라고 하기에 ‘내가 각하한테 잘못 배웠습니까. 내가 김대중, 이회창도 아닌데, 저 이제 안 합니다’했다. 자기 말 책임 안 지면 존경 못 받는다. (정치판) 되돌아 보지 않으려고 부산 온 건데. 서울, 멀다 아이가.”

홍 전 수석은 정치는 떠났다고 하면서도 관심까지 떠나지는 않은 듯했다.

“한국에는 페인트칠한 보수와 페인트칠한 진보만 있다. 정체성이 없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환경권력이 돼버리니…”라거나 “노조가 권력화돼서 노조원 돈 갖다가 펑펑 쓰면서 성폭행이나 하고 자식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냐”는 말도 했다.

YS는 취임하자마자 “정치자금을 한 푼도 안 받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사이 정치자금이 그에게로 몰렸다. 그는 이 돈을 여야 정치권에 돌렸다. 다만 정치자금을 주무르면서도 축재는 하지 않은 것으로 검찰수사 결과 드러났다. 그는 일종의 YS 대리인 역할을 했다. 그는 정치자금을 자신이 사흘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거장’이란 말도 들었다.

홍 전 수석이 구속될 당시에도 요즘처럼 ‘리스트’가 정국의 화두였다. 그러나 홍인길 리스트는 끝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오래전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검찰도 리스트, 리스트 했는데 그런 것은 적어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석급 파워 누린 ‘왕비서관’ 정상문
홍 전 수석이 업무능력만큼은 높이 평가했던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노무현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들은 그를 ‘깐깐하고 꼼꼼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이 있건 없건 사람들이 많이 나와 일하길 원하고, 특별하게 일정이 없어도 대기하길 원했다. 닦달을 많이 해서 아랫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A행정관)

정 전 비서관의 청와대 내부 파워는 막강했다고 한다. 386세대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B씨의 얘기다.

“총무비서관이 원래 힘이 있는 자리인 데다 대통령 친구이기까지 했으니 실제론 수석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직급은 같은 비서관이라 해도 별로 대화한 적이 없었다. 비서실장들도 예산을 타 쓰려면 총무비서관을 거쳐야 했으니 안 그랬겠나.”

그는 대통령과 업무외적으론 거의 대등한 관계의 집사였다. 20대 청년 시절 함께 고향 암자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사이였으며, 노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후에도 사적인 만남이 이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정부부처나 공기업 인사 등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정씨는 사석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서울시 감사관 출신인 그에게 청와대 군기반장 역할도 맡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정작 위험성이 지적된 것은 그였다.

청와대에서 파견근무를 한 검찰간부는 “정씨가 맺고 끊음이 확실치 않아 항상 문제를 일으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쪽에 조심시키라고 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누구도 대통령 친구인 왕비서관을 ‘터치’하지는 못했다.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의 역할은 홍 전 수석과 조금 달랐다. 홍 전 수석은 청와대와 대통령 주변의 ‘가교’ 역할을 하느라 돈을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공무원 출신이면서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인 그는 청와대 예산 가운데 일부를 별도 차명계좌에 넣어두었다.

정 전 비서관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노 전 대통령 가족에게 흘러간 600만 달러의 진실도 알고 있다고 검찰은 판단한다. 돈 전달 과정에서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내가 받아서 썼다”고 주장한 박연차 회장의 돈 3억원과 청와대 특수활동비에서 빼돌린 12억원이 그의 차명계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면 친구이자 집사인 정씨와 대질신문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대통령과 집사가 특별조사실에서 만나 진실게임을 벌일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정 전 비서관에 앞서 노 정부의 첫 총무비서관이던 최도술씨는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사무장을 맡았고, 16대 대선 당시 부산지역 대선자금을 총괄했다. 노 전 대통령과는 20년 이상 관계를 맺어온 금고지기였다. 그는 2002년 대선 직후 SK그룹 회장으로부터 11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런 일이 발생하자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해 정국에 파란을 일으켰다.

고향 후배였던 자신의 집사 때문에 코너에 몰리는 듯했다. 하지만 최씨 수뢰사건은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를 촉발시켜 노 전 대통령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부산=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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