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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대통령 외환위기 언제알았나…엇갈리는 주장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인식한 것은 언제, 누구로부터인가.

이는 金대통령의 국정파악 실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으로 새 정부에서 경제청문회가 열리면 핵심 추적대상이다.

金대통령이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7일께로 청와대관계자들은 기억한다.

문제는 金대통령에게 누가 첫 경보메시지를 보냈냐는 점이다.

청와대에서조차 기억이 엇갈린다.

몇 가지 주장이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7일 '비공식채널'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1월7, 8일께 金대통령은 한 금융전문가로부터 '외환위기가 심각해 IMF 지원요청이 불가피하다' 는 얘기를 듣고 심각성을 처음 알았다" 고 말했다.

그는 "金대통령은 곧바로 경제팀에 IMF구제금융 신청을 지시했다" 고 강조했다.

이 말대로라면 당시의 강경식 (姜慶植)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金仁浩) 청와대경제수석은 '직무유기' 를 한 셈이 된다.

그러나 청와대의 또 다른 고위인사는 윤진식 (尹鎭植.현 세무대학장) 당시 금융비서관이 첫 보고자라고 전했다.

尹비서관은 강경식 - 김인호팀이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에만 관심을 쏟자 김광일 (金光一) 정치특보 등에게 외환위기상황의 급박성을 강조했고, 金대통령은 尹비서관을 두 차례 불러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세번째 얘기는 또 다르다.

당시 경제팀의 한 핵심인사는 "정부에서는 이미 지난해 11월7일을 전후해 IMF구제금융 신청을 검토했으며, 11월14일에는 姜부총리.金수석.이경식 (李經植) 한국은행총재가 金대통령에게 IMF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보고하고 재가를 받았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수위의 김정길 (金正吉) 정무분과간사는 "金대통령은 11월 중순에야 공식채널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경제팀의 안일한 대응이 경제위기를 악화시켰다" 고 발표했다.

金간사는 이미 청와대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공식입장을 들은 터였다.

그렇지만 金대통령이 외환위기를 진짜로 깨달은 것은 지난해 11월28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전화를 받고서였다는 말도 있다.

한은쪽에도 유사한 논쟁이 있다.

실무진이 위기상황을 보고했지만 수뇌부는 흘려 넘겼다는 주장이 그 하나다.

이경식총재는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들이 "지난해 10월24일 한은 국제부장이 IMF구제금융 신청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달했다는데 왜 조기대처를 못했느냐" 고 따지자 "IMF를 제목으로 하는 보고는 없었으나 IMF 얘기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상황이 심각해진 데 따른 한은의 대처방식에 대해서는 "회의를 거듭하다 결단을 못 내렸다" 고 옹색하게 답변했다.

경제파탄 책임문제와 관련해 어떤 주장이 맞는지 지금으로서는 속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저마다 경제청문회를 의식한 '면피성' 냄새가 짙게 풍기는 것은 사실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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