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반격'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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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학을 나와 의류 무역상을 하던 이모(41)씨는 2001년 모 캐피털회사에서 사업 경비조로 1700만원을 대출받았다.

2년간 연체 한번 없이 꼬박꼬박 대출이자를 갚아온 이씨는 2003년 12월 경기불황으로 졸지에 망해 이자도 갚지 못할 지경이 됐다. 신용불량자로도 등록됐다.

이에 금융회사는 이씨에게 매일같이 전화 등으로 빚독촉을 해댔고 지난 4월에는 집에까지 찾아와 혼자 있던 70대 노모에게 "아들 빚이 1억2000만원이나 돼 형사고발될 것"이라며 겁을 줬다.

참다못한 이씨는 지난 5월 캐피털 회사와 추심원을 협박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씨는 "일부러 돈을 안 갚는 것도 아닌데 협박까지 일삼아 견딜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채권금융기관의 불법 추심 관행에 대해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서민들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씨 사건을 맡은 오명근 변호사는 4일 "인터넷 카페(www.ohmycredit.co.kr)를 통해 불법 추심을 당한 사례들을 모아 무료로 형사 고소를 대리해 줄 계획"이라 말했다. 회원 수가 6만여명에 달하는 인터넷 동호회 '신용불량자 클럽'(http://cafe.daum.net/credit)도 법적 대응을 위해 각종 불법 추심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다.

현행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추심원들이 ▶폭행.협박을 하거나▶채무 내용을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알리거나▶정당한 사유 없이 직장에 찾아오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불법 채권 추심과 관련한 금융감독원 민원 건수는 2002년 992건에서 지난해 8617건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최근에는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해 카드사들로부터 사기혐의로 고소당한 신용불량자들이 카드사를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카드빚 1800여만원을 갚지 못해 사기혐의로 기소된 전모(45.여)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나우리의 이명숙 변호사는 "카드 대금을 못 갚는 것은 민사상 '채무 불이행'일뿐 형사상 '사기'가 될 수 없는데도 카드회사들이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용불량자들의 이 같은 법적 대응에 우려도 없지 않다. 금감원 소비자보호센터 측은 "불법적인 채권 추심 관행에 문제가 있지만 소송을 빚을 갚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이 늘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현경.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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