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운 설움 아닌 더 배우는 기쁨을 위하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1호 20면

방송통신대 전용오 학생처장은 올해 초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여파로 등록 학생수가 1만 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2월 말 등록이 마무리되자 우려는 놀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등록생 수가 지난해보다 되레 1500명가량 더 늘어서입니다. 전 처장은 “자기계발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방송대 네트워크

국내 유일의 국립 원격대학인 방송대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방송대는 지원자 수가 매해 줄어들면서 쇠락의 위기를 맞는 듯했습니다. 1993년 16만 명을 넘어서던 신ㆍ편입 지원자 수가 2006년엔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전국 지방 중소도시에 대학이 계속 들어선데다, 2001년부터 여럿 생겨난 사이버대학에 학생들을 빼앗긴 것입니다.

2007년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원자수가 10만 명을 다시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1학년 신입생 지원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2, 3학년 편입생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 방송대 지원자 중 1학년 신입생은 40.6%지만 3학년 편입생은 59.4%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993년 당시 1학년 신입생 비율은 70%에 가까웠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편입생이 신입생을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방송대 졸업생이 다시 방송대에 입학하는 학생도 늘고 있습니다. 일반 대학이라면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편입학을 지원한 학사학위 소지자 5명 중 1명은 방송대 졸업생입니다.

방송대 대외협력팀 서보윤 박사는 “방송대가 명실상부한 자기계발과 평생교육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매년 2만명 안팎의 학사학위 소지자들이 방송대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방송대의 또 다른 특징을 꼽으라면, 공부하는 주부가 많은 대학이라는 점입니다. 올해 총 등록생 18만3503명 중 전업주부가 3만83명(16.4%)에 달합니다.

이 같은 방송대의 인기 비결을 요약하면 ‘싸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한 학기 등록금은 30만원대에 불과합니다. 일반 대학의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칩니다. 방송대와 경쟁하는 일반 사이버대학도 등록금이 100만원을 넘어섭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교육환경도 큰 장점입니다. 방송대 강의는 TV와 인터넷은 물론 휴대전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전국 13개 지역에 있는 지역대학도 장점입니다. 전체 수업의 30%는 각 지역대학에서 열리는 출석수업으로 받을 수도 있고, 지역대학 도서관, 동아리 등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대학 캠퍼스의 느낌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방송대가 값싸고 손쉽게 학위를 딸 수 있는 ‘학위 공장’은 아닙니다. 방송대 통계에 따르면 10명이 입학하면 2명 정도만이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혼자서 해야하는 공부를, 그것도 직장에 다니면서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간ㆍ기말고사를 실제 교실에서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는 학점을 딸 수 없습니다. 덕분에 ‘방송대를 졸업했다’는 것은 ‘성실하고 꾸준하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18만 재학생, 45만 졸업생으로 대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학 네트워크도 매력입니다. 재학생 중에 전업 학생은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학생들 중에는 현역 국회의원에서부터 대학 총장ㆍ교수ㆍ기자ㆍ연예인 등 없는 직업이 없을 정도입니다. 방송대 충남 지역대학에 다니는 한 재학생은 “학생자치회나 스터디모임이 인적 네트워크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인맥을 통해 해결하거나, 각자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을 발휘해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일부 지역 모임에선 “해병대보다 더 끈끈한 모임”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방송대 학생으로 적을 걸어놓은 지역 국회의원도 표를 의식해 지역대학 행사나 학생자치회 모임 등에 가끔 나와 얼굴 알리기에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