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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통일부 오세웅 연락관, 정년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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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2000년 8월 박재규 통일부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세웅 연락관이 남북연락관 직통전화로 리인호 북한 연락관과 통화하는 모습. [연합]

"20년의 세월을 판문점에서 보냈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떠나야 한다니 섭섭하긴 하지만 후배들이 잘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1981년부터 남북한 간의 크고 작은 회담과 다양한 교류협력사업의 연락업무를 맡았던 오세웅(60.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 소속) 판문점 연락관이 지난 1일 정년 퇴직해 판문점을 떠났다.

그는 소감을 묻자 "연락을 주고받던 북한 친구들이 '당신은 남북관계의 산 증인인데 우리가 표창이라도 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더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 연락관의 남북관계 업무가 본격화한 건 84년 북한이 수해를 당한 남한에 구호물자를 지원할 때였다.

그는 "당시엔 남북 직통전화가 끊어져 있던 상황인데 수재 구호물자 지원을 계기로 전화선이 연결됐고, 이후 고향 방문단 교환으로 이어졌다"며 "이 일이 오늘날 남북관계의 토대가 됐다"고 회고했다. 또 "남북회담의 전 과정을 숨어서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보람스럽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회담으로는 2002년 금강산에서 열렸던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협의회를 꼽았다. 그는 "우리가 북한 측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까 금강산 관광선의 출항시간을 의도적으로 늦추는 바람에 잠시 억류 아닌 억류상태가 빚어지기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북한측 회담 대표로는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박창련 전 북측 위원장과 남북장관급회담의 김영성 전 북측 단장을 꼽았다.

정부는 오 연락관에게 녹조근정훈장을 수여했으며, 주한 미군 측은 판문점에서 그와 유엔군사령부가 맺은 인연을 되새기는 송별회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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