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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음과 실행 겸비 … 어리석음 꾸짖지 않는 지혜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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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31면

출가자가 닦음(修)과 실행(行)을 겸비하기는 쉽지 않다. 닦음을 내세운 나머지 실행이 가난하거나, 실행을 앞세운 터라 닦음이 뒤로 밀려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원효 스님도 탄식하기를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고 하셨다.

내가 본 원학 스님

 스님께서는 종단의 소임을 두루 거치셨다. 말사며 본사며 행정 실무 경험을 내실 있게 다지신 분이다. 맺고 끊는 것이 언제나 너무 분명해 날카로운 칼을 보는 듯하다. 일을 맡을 때는 겸허하지만, 떠날 때는 그지없이 담백하게 떠나신다. 큰 절의 주지 소임 인수인계에는 잡음이 종종 따르지만 스님에게는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연화사가 그랬고, 봉국사가 그랬고, 대흥사가 그랬고, 조계사 주지 소임이 그랬다. 모두 깨끗하게 끝내셨다. 혼탁한 세상에서 청청함을 갈망하는 사부대중에게는 스님의 일상이 감탄으로 다가온다.

 스님은 금강경(金剛經) 야보송(冶父頌)을 번역하셨는데 책 제목을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꾸짖지 않는다”라고 했다.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가운데 야보송은 모두가 번역을 꺼린다. 글이 어렵고 시구가 독특해 마땅한 우리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십수 년 전 강원도 정선의 농막으로 보내온 그 책을 밤새워 읽으며 스님의 문기와 글을 보는 투철한 안목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스님은 한때 종단의 일로 제주도 토굴에서 서화에 정진했던 일이 있다. 항파두리 근처의 유수암이 스님의 거처가 있는 곳이었다. 매사가 빈틈없는 스님의 일상이지만 참된 출가수행자의 모습을 나는 그때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무렵 노심초사로 스님의 건강이 좋지 않았었는데 하루를 잘게 쪼개 사람들에게 불교와 그림과 글씨를 가르치고, 법화경 사경을 계속하고 여가에는 몸을 치료하셨다. 한가롭되 한가로움을 잘 쓰고, 불우하되 불우함을 탓하지 않는 풍란화 매운 향 내음 같은 자태였다.

 스님이 약관일 때 거창 연수사에 주석한 일이 있었다. 그때 지방 유지의 따님이 스님께 반해 스님에게 시집가지 않으면 죽겠다고 부모를 졸랐다. 스님은 간곡하게 “나는 출가수행이 인생의 목표”라고 설득했다. 그래도 마음이 돌려지지 않자 표연히 연수사를 떠났다. 자상한 단호함이 있었다. 종단이 한때 스님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 적이 있다. 스님은 굴하지 않고 시비와 곡절을 정확히 가려 끝내 원칙을 회복하였다.

예리한 끈질김이 있었다. 스님에게는 이렇듯 알게 모르게 수행의 난관이 있었는데, 지혜로운 자가 어리석음을 꾸짖지 않듯 그 난경 속에서도 서화를 즐기셨다. 서화를 즐기되 서화에 물들지 않으니 참으로 청정한 수행력이 여기에 있음을 본다.

 스님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물속에 뿌리내리되 물 위에 피는 연꽃과 같다. 스님의 큰 수행력이 사부대중에게 크게 빛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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