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조원 상호 지급보증 정리…재계 해법 못찾아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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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새 정부가 상호지급보증 금지와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를 99년까지 조기단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재계는 일단 이같은 조치가 "기업활동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는 시대적 요구로 보고 수용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 (異論) 이 없으나 현실적으로 시행할 해법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

전경련의 손병두 (孫炳斗) 상근부회장은 6일 이와 관련해 "계열사 상호지보 해소 등은 국제통화기금 (IMF)에서도 강력히 요구한 이상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며 "다만 이를 가능토록 하는 여건이 조성되도록 정부와 협의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지급보증문제를 풀려면 돈을 마련해 빚을 갚든가, 은행들이 보증없이 신용만으로 대출해주는 관행이 정착되든가 해야 하는데 모두 현실적으로 간단치 않다고 보고 있다.

30대그룹의 상호지보 총액은 현재 부실기업 인수때 딸려온 지보 등 예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도 33조원에 이른다.

30대그룹은 우선 올 3월까지 자기자본비율의 1백%가 넘는 지급보증액 (총 6조6천억원) 부터 해소해야 하는데 회사채 발행.증자 등이 막혀 있는데다 부동산.계열사 매각도 어려워 이를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30대그룹으로 지난해 새로 편입돼 이에 대한 준비가 없었던 거평.아남그룹 등의 경우 3월까지 해소할 지급보증액이 1조원을 넘고 있으며 기존 30대그룹중 상당수 그룹도 자금난 때문에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H그룹 관계자는 "현재 금융시장이 마비돼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힘겨운 상황에서 상호지급보증 축소를 위한 재원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며 "새 정부가 이를 밀어붙이면 대량 부도가 불가피할 것" 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상호지급보증이 해소되려면 ▶계열사간 합병때 조세부담을 완화해주고 ▶은행들이 채무보증액을 신용대출로 전환하고 ▶부실자회사 정리때 상호지급보증 때문에 모회사가 안게 될 채무를 은행에서 모회사 주식으로 전환해주는 방안 등이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는 또 모든 계열사의 재무제표를 합산한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와 관련해서도 "계열사간 거래분이 결합재무제표에서 빠지면서 30~40% 이상 외형이 감소하고 상호출자액도 자본에서 제외하게 돼 재무구조가 더 나빠질 것" 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경련은 이에 따라 15일 회장단 회의를 열고 새 정부의 대기업정책에 관한 재계의 입장을 논의, 정리할 예정이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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