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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강 멈췄을 뿐 1% 성장 때까진 “회복” 단언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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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뉴스 분석 -4.3%와 0.1%. 둘 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성장률이다. 비교 시점이 다를 뿐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외환위기(1998년 4분기 -6%) 이후 최악이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에 비해선 가까스로 플러스 성장을 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의 급속한 추락 국면은 일단 진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방향성에선 일말의 희망이 보인 셈이다.

그렇다고 바닥을 친 것은 아직 아니다. 바닥이 임박했다고 보기도 조심스럽다. 최춘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지난해 2분기 이후 시작된 경기 하강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며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1% 정도가 돼야 그 직전 분기를 경기 저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물가 부담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을 연간 4%로 볼 때, 분기 단위로 잠재성장률의 4분의 1 정도가 나와야만 회복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의 자유 낙하가 멈춘 것은 자연스러운 경기 사이클에 따른 게 아니다. 정부가 펼친 ‘낙하산’, 즉 재정 투입 덕이다. 정부의 직접 사회보장비 등의 지출은 전 분기보다 3.6% 증가했고, 건설 투자는 5.3% 늘었다. 민간 주택 건설이 부진한 탓에 건설 투자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벌인 토목사업이었다. 정부는 1분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계획보다 4조6000억원 늘어난 15조3000억원을 집행했다. 이런 지출이 없었다면 전 분기 대비로도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수 없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민간 소비도 계속 부진하다. 전 분기보다 0.4% 늘긴 했지만, 지난해 4분기 4.6%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부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앞으로의 성장과 직결되는 설비 투자는 상황이 더 나쁘다. 지난해 4분기 전 분기 대비 14.2% 감소한 데 이어 1분기에도 9.6% 줄었다. 장민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지난해 4분기가 워낙 나빴기 때문에 1분기 소폭 오른 것에 의미를 두기 어렵다”며 “설비 투자가 2개 분기 연속으로 급감해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경기 회복을 단언하지 못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금융경영인 조찬 강연회에서 “지금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혼재돼 있다”며 “성급한 경기 판단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장률이 전 분기보다 0.1% 오른 것은 좋은 신호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 -4.3%가 나온 것은 아직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려면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수출이 살아나야 한다고도 했다. 수출 의존도가 큰 우리 경제의 특성상 토목사업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 재정 지출의 경기 자극 효과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다행스러운 점은 드문드문 긍정적인 신호도 감지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LG전자·KT 등이 1분기에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냈다. 또 산업연구원이 지난달 말 668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분기 매출 경기실사지수(BSI)는 100을 기록했다. 기업들이 전 분기보다 매출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는 뜻이다. 한은도 지난 10일 경제 전망을 통해 2분기 성장률을 전 분기 대비 0.5%, 하반기엔 0.9%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지원 JP모건체이스 이코노미스트는 “최악의 시기는 지난해 4분기였고 지금은 서서히 바닥을 지나가는 단계로 본다”면서도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을 하려면 세계 경제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반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V자형 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김원배·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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